◎“경비와 교통비로 수만달러 사용/부인 줄곧 동행 밀항직전 헤어져/도와준 사람 있지만 밝힐 수 없다”김경호 최현실씨 일가의 망명을 성사시킨 최영도 최정순씨 부부가 9일 하오 뉴욕 플러싱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딸 일가의 탈북과정을 밝혔다. 최씨부부는 그동안 외부접촉을 피해오다 현실씨 일가가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자 이날 처음으로 회견을 자청,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회견에는 미국에 거주하는 4남매도 동석했다.
―탈출계획은 어떻게 시작됐나.
『가족찾기로 시작됐다. 4년전 북한을 왕래하는 사람에게 부탁, 주소를 알아냈고 그동안 50여차례 편지와 사진이 오갔다. 수개월마다 한번씩 5백달러정도의 돈을 보내기도 했다』
―탈출시키기로 마음을 먹은 동기는.
『편지속에 돈을 넣어 보냈으나 김일성 사망후로는 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후 중국에서 착실한 사람을 찾아 처음에는 쌀 한포대씩을 전하게 했고 신용이 있는 것 같아 이 인편을 통해 송금했다. 탈출에는 내가 나서기 위해 중국대사관에서 비자까지 받았으나 건강이 안 좋아 집사람이 세번이나 가게 됐다』
―비용은 얼마나 들었는가.
『중간역할하는 사람들에게 들어간 경비와 교통비로만 몇만 달러가 들었다. 뇌물같은 다른 비용은 전혀 없었다』
―함께 탈출한 국경 경비대원 최영호씨가 조카라는 보도가 있는데.
『얼굴도 보지 못했고 기억이 잘 안난다. 그 군인이 경비소에 있던 사람으로 이번 탈출에 큰 역할을 했다』
―부인이 중국에서 계속 동행했는가.
『집사람은 딸 일행이 홍콩으로 밀항하기 직전에 갈라져 5일 먼저 홍콩에 도착해 있었다. 나중에 그들이 도착했지만 수용소로 들어가는 바람에 이후로는 못 만났다』
―딸 일가족의 북한 탈출이 얼마나 어려웠는가.
『목숨을 건 탈출이었다. 붙잡힐 경우에 대비, 전가족이 극약을 품고 있었다』
―처음부터 서울로 데려올 생각이었는가.
『북한을 탈출한다 해도 중국에 남아서는 살기가 힘들다. 어떻게 해서든 한국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중간에서 도와준 사람은.
『있긴 하지만 밝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한국 정부당국에는 언제 알렸는가.
『11월말께 뉴욕의 정부관계자에게 신고했다. 그는 자기 일처럼 잘 봐주겠다고 했다』
―가장 걱정이 됐을 때는.
(최정순씨)『끝까지 가슴을 졸였다.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바람에 남편과 같이 병까지 났다』(웃음)
―딸 대신에 며느리를 부인과 함께 보낸 이유는.
『당초에는 셋째딸 현희를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딸의 이름이 남편의 성을 따라 미국식으로 김현희로 표기되는 바람에 중국 대사관에서 KAL기를 폭파한 김현희와 이름이 같다면서 비자발급을 거부해 며느리가 가게 됐다』<뉴욕=조재용 특파원>뉴욕=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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