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짜리 설치미술품이 쓰레기로 사라졌다. 믿기지 않겠지만 결코 거짓말이 아니다. 옛조선총독부건물 철거를 위해 세워놓았던 대형 가림막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가림막은 지난달 총독부건물의 지상구조물 철거와 함께 제거돼 1년3개월만에 작품으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쓰레기가 됐다.지난해 광복절 총독부건물 철거작업 착수에 앞서 기획된 가림막 설치작업은 95미술의 해의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한변 길이 2m크기의 정사각형 화판 340개를 모자이크한 설치작업에는 작가 100여명이 참여했다. 작품제작비 4억2,700여만원은 문체부 예산으로 충당했고 재벌그룹의 건설회사에서 철골구조물설치 등 5억원의 시공비를 협찬받았다. 총독부건물 철거 과정에서 드러날 볼썽사나운 모습을 가리고 도시미관을 위한다는 명분도 포함돼 있었다.
서울시민 대다수는 가림막 철거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여느 건설현장의 경우 처럼 철거공사가 완료됨에 따라 자연히 없어진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문제의 가림막은 한 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는 정부나 미술계의 단견 바로 그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문화계의 한 인사는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차라리 10억원을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구입비로 지원했으면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10억원이면 국내에서도 최고수준 작가의 작품을 여러점 구입할 수 있는 거금이다. 가림막이 꼭 필요했다면 계획단계부터 영구보존을 염두에 두었어야 마땅했다. 가림막설치와 철거 과정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일과성 문화, 거품문화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을 문화예술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문체부가 앞장서서 조장하지 않았나 하는 서글픔마저 든다. 차제에 문체부는 9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문화예술의 해」사업의 허실을 겸허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91년 연극영화의 해를 시작으로 춤, 책, 국악, 미술, 문학의 해로 이어진 이 사업이 당초 취지대로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고양하고 해당 분야 발전에 보탬이 됐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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