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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무열왕/오세화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장(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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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무열왕/오세화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장(1000자 춘추)

입력
1996.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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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큰스님의 속성이 설씨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스님은 이두문을 창안한 설총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진 때문이다. 삼국유사 제4권에는 『어느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지 않겠는가? 빌려주면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고 노래하는 원효를 이해하고 혼자된 딸 요석공주를 허락하여 설총을 낳을 수 있게 한 태종 무열왕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스스로 파계라고 생각한 원효는 이 일을 계기로 승복을 벗고 민중 속으로 파고들었다.『기회가 없는 능력은 아무 쓸모가 없다―나폴레옹』이라는 글귀를 서울의 지하철 안에서 보면서 원효의 고사가 떠올랐다. 세상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 뜻을 품고 살지만, 기회를 얻지 못해 일찍 좌절하기도 하고, 혹은 좌절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기도 한다. 아주 드문 예이기는 하지만 쉽게 뜻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다.

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서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기회에 간여할 수 있는 권한과 위치에 오르려고 벅찬 노력을 한다.

많게든 작게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축복이다. 나는 한국화학연구소 근무 초기에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실장이 못되고 실장대리 역할을 했던 때가 있다. 비록 직위나 보수는 만족스럽지 못해도 열심히 일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축복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평생에 몇번은 온다는 기회. 우리는 기회가 다가왔을 때 그것이 행복의 시작이 될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단정히 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가 없이 맞는 기회란 얼마나 당황스러운 것이겠는가. 기회를 무위로 돌리는 함정일 수도 있다.

내게 주어진 기회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위치에 섰을 때 그가 천부의 탤런트를 발휘하도록 힘을 주는 일 또한 얼마나 소중한 일이겠는가. 우리 주변에는 많은 원효들이 그들의 태종 무열왕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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