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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경호냐”“형님…”/김경호씨,형과 46년만에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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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경호냐”“형님…”/김경호씨,형과 46년만에 상봉

입력
1996.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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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서 벌떡일어나 포옹·울음/손자·손녀들 신기한듯 어리둥절『네가 경호냐. 날 모르겠냐』 『혀엉님…』

부인 최현실(57)씨 등 일가족 16명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한 김경호(61)씨와 큰 형 경태(70)씨의 재회는 외마디 절규로 시작됐다. 46년만의 극적인 만남이었다.

9일 하오 5시42분께 김포공항 2청사 3층 보안구역(CIQ)내 17번 게이트 앞에서 경호씨를 본 순간 경태씨는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서너 발자국 앞에 서 있는 동생에게 다가가 『네가 경호냐』며 소리친 뒤 목놓아 통곡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언어장애까지 있는 경호씨는 46년 단절의 세월 때문인지 멍하니 쳐다보다 형의 얼굴을 알아보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형제의 뜨거운 포옹은 한동안 풀릴 줄 몰랐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만져보며 깊게 패인 주름을 확인하곤 한많았던 지난 세월 생이별의 고통에 다시 몸을 떨었다.

경태씨는 『전쟁 때문에 헤어진 뒤 죽은 줄 알고 명절때마다 네 차례를 지냈다』며 말을 잇지 못했고 경호씨는 『누나와 동생들은 어디 있느냐』며 안부를 물었다.

작은 아버지 최전도(78)씨가 조카를 알아보고 『현실아』라고 외치자 경호씨의 부인 최현실씨는 와락 작은 아버지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최씨의 아들 철욱(43·베델의원장)씨가 『누님, 저 동생이에요』라고 말할 때 잠시 손을 잡은 것을 빼곤 현실씨는 참았던 혈육의 그리움을 한꺼번에 풀려는 듯 최씨와 떨어질 줄 몰랐다.

혈육들이 눈물바다를 이루며 상봉의 기쁨을 맛보는 동안 함께 탈출해온 경호씨 장남 금철(30) 차남 성철(26)씨, 차녀 명실(36) 3녀 명숙(34) 임신 7개월인 4녀 명순(28)씨 등과 사위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경태씨는 조카들을 한꺼번에 껴안으며 혈육의 뜨거운 정을 확인했고 박현철(9)군 등 손자 5명은 어른들의 고통과 기쁨을 아는지 모르는지 처음 겪는 주변의 모습이 신기한 듯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하오 5시17분 대한항공 618편기로 도착, 5시30분께 게이트 앞에서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한 일가족 17명은 가족과 상봉한 뒤 하오 6시3분 귀빈실 의전주차장에 대기중인 25인승 미니버스에 올라 공항을 떠났다.

경호씨 일가족은 관계기관 조사를 받기 위해 공항대로 올림픽대로 등을 거쳐 시내 합동신문소로 이송돼 설렌 마음으로 고국의 첫 날 밤을 보냈다. 이 날 김포공항은 경호씨 일가족 17명이 연출한 엑소더스의 대단원이 막을 내리는 감동적인 현장이었다.<홍덕기·윤순환·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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