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관영통신 신화사는 국무원에 속해 있다. 원래는 국공내전때인 1931년 홍색중화통신사로 출발, 당의 선전만을 맡아오다 37년에 신화통신사(약칭 신화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49년 새정부출범과 함께 기능과 소속을 달리하게 됐다. 마오쩌둥(모택동)이 국가홍보 보도기능 외에 해외에서 미수교국을 상대로 한 「준외교기능」까지 부여한 것이다.현재 베이징(북경)본사엔 5,000여명의 직원이 있고 87개국에 해외지사를 둔 채 영·불·중·스페인·아랍·러시아 등 6개국어로 번역한 뉴스를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신화사가 우리와 처음 접촉한 것은 85년 3월22일, 중국해군 어뢰정표류사건때였다. 군인들끼리 난동을 일으켜 8명이 죽고 2명이 다친 채로 우리 서해안에 표류해 온 것이었다. 이때 홍콩의 신화사지사가 우리 공관에 협조를 요청하면서 5일만에 송환하는 역할을 했다.
이 통신사가 최근 대만 수도 타이베이(대북)에 발을 들여 놓았다. 분단(49년)이후 줄곧 『인민의 적』 『미제국주의의 반동적 주구』 『민족분리주의 반역집단』 등으로 대만을 매도해 온 중국의 『입』이었다는 데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치적으로 예민한데다, 안전 등을 고려해 양측은 공식발표를 생략했다. 또 간판도 화신으로 위장했고, 활동범위 역시 투자와 교역을 촉진하는 경제정보제공으로 밝히는 등 퍽 조심스럽다. 그러나 대만정부는 지난주 중국기자의 타이베이 주재 신청을 허락한다고 발표해 한층 다가선 양측관계를 엿볼 수 있다.
87년 대만의 계엄령해제로 개시된 친척방문 등 인적교류는 오는 연말까지 연인원 1,000만명 돌파를 낙관하고 있다. 서신교환, 학술교류 등도 큰 불편이 없다. 연간교역규모 200억달러에, 대륙투자규모도 250억달러를 자랑하고 있다. 통일사업을 맡아온 양안교류협회의 구호는 『사상, 이념을 떠나 인민(국민)의 행복추구를 우선한다』라고 되어 있다. 좀처럼 풀릴 줄 모르는 남북한관계 때문인지 신화사의 타이베이 상륙은 또 하나의 부러움이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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