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과 흉악범의 구별사형제도의 폐지와 존속은 세계적 논란거리 중의 하나다. 그런데 사형제도를 완전 폐지한 나라는 없으면서도, 폐지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다. 사회의 타락과 함께 범죄가 날로 급증하고 흉포화 돼가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종교적 범위나 학문적 관심을 넘어서 시민이 「사형제도의 위헌」을 헌법재판소에서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일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의 합헌」 결정을 내렸다. 결정문은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적 욕구가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 불가피하게 선택된 제도이며…」 등으로 기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결정에는 어딘가 미묘한 느낌이 드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언젠가는 사형제도가 없어져야 하겠지만…」
이 단서를 눈여겨 보며 곱씹어 생각한 것이 비단 나 혼자일까. 아마 평소에 사형제도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사람이라면 거의가 이 대목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은 헌법재판소의 조심스러움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자신이 없는 느낌이기도 하고, 많은 고심을 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헌법재판소에서도 사형제도가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 깊숙한 속에는 지난날 법의 이름으로 사형을 선고했을 판사 개개인들의 고뇌가 숨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은 큰 문제를 안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건 바로 결정의 획일성이고 독단성이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사형제도가 없어지기를 희망할 것이 아니라 이번 결정을 유형화·세분화시키는 고심과 진통을 겪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치범·사상범 등은 사형제도로 다스려서는 안되고, 흉악범·가정파괴범 등에게는 사형제도가 합헌…」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헌법재판소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월권사항이라고 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월권」을 해서 사회적 문제제기를 하고, 그것을 계기로 사회여론이 일어나고, 그리고 국회에서 입법하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닌가. 이런 말을 『소설가적 망상』이라고 탓하기 전에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으로 앞으로 그 어떤 못된 대통령이 나타나 정치범이나 사상범을 멋대로 처형해도 괜찮은 합법성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살인도 없고, 사형제도는 더구나 없는 세상을 꿈꾸며 살고 있다. 그것은 문학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자본주의 찬미가 커질수록 범죄는 늘고 그 수법은 흉악해지고 있다. 이 모순 속에서 사형제도 폐지만이 능사인지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범과 사상범을 사형시키는 사회는 더 말할 것 없이 미개사회다. 그런 사회를 없애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어야 하고 인류사회의 지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술이나 마약 같은 것에 취하지 않은 말짱한 정신으로 범죄조직을 만들고, 자기와 아무런 감정이나 원한이 없는 제3자를 무작정 죽여대거나 축재하여 잘살기를 바라는 흉악범들의 문제는 신중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상에만 치우친 무조건적 인도주의는 현실에서는 죄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억울함을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범죄를 더욱 조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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