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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풀잎 속 작은 길’/마음의 결들이 느껴지는 언어(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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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풀잎 속 작은 길’/마음의 결들이 느껴지는 언어(시평)

입력
1996.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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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골목길을 무심히 지나다가 아스팔트를 비집고 돋아난 풀을 보고 생명의 경이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감동을 「얼랄라/저 여리고/부드러운 것이!」라는 즉각적인 언어로 직역해낼 줄 아는 사람은 소수의 언어마술사뿐이리라. 생각해보면 그런 탄성은 지극히 상투적일 수도 있을 법한데, 시인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마음의 언어를 날 것 그대로 이끌어냄으로써 놀램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생명의 경이라는 게 저 드높은 곳에 살고 있는 어떤 백익조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아주 친숙한 것임을, 아니 그렇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야만 생명의 경이로움을 스스로 실천할 수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나태주의 「풀잎 속 작은 길」(고려원간)에는 그런 시인의 소중한 깨달음이 곳곳에서 반짝인다. 그는 아주 일상적인 언어로 말하지만, 그 언어에는 마음의 결들이 다 살아 있어서 독자를 정겨운 대화의 공간 속으로 안내한다.

가령, 물고기를 방생하면서 「이젠 가 봐/이젠 나를 떠나도 좋아/떠나가서 풀밭에 가로눕는/초록의 바람이 되든지/…/네 맘대로 해봐」하며 속내 이야기를 하듯 속삭이고, 「하늘이 개짐을 풀어헤쳤나/비린내 두어마지기/질펀하게 깔고 앉아/속눈썹 깜짝여 곁눈질이나 하고있는/하늘」같은 구절에서처럼, 딴청하면서 슬그머니 여인의 옷을 벗기듯 「은근짜」한 목소리로 독자를 유혹한다. 이런 친화감은 그가 그것을 바깥 세상에서 배웠기 때문에 더욱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울린다. 「사람들한테 실망하고/세상일이 재미없어지면서/자주 들판에 나가 풀을 만나」러 간 것은 그가 세상 일을 잊고 싶어서였으리라. 그러나, 그는 「풀들한테 놀라고 풀들한테/한 수 톡톡히 배우」게 됐던 것이니, 왜냐하면 풀들의 저 무심한 표정들도 「실상 어렵사리 세상의/중심으로 돌아가고자 오솔길을/여는 하나의 땀흘리는 노역」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떤 생의 아름다움도 생 바깥에 있지 않다. 그것은 세상을 따뜻한 화해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작은 실천들 바로 그 속에 있다. 나태주의 시는 이런 작은 실천들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그의 시는 어떤 거창한 생명사상보다도 더 깊이 있다.<정과리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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