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망하게 시합하자 했죠”상업은행이 뛰고 있다. 불과 3년전만 해도 침체의 늪에 빠졌던 상업은행이 최근 은행업계 뿐만 아니라 국내기업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경영혁신을 이루고 있다.
상업은행은 3일 한국능률협회가 개최하는 「신경영혁신대회」에서 국내기업중 가장 경영혁신성과가 뛰어난 기업으로 인정받아 종합대상을, 정지태 행장(57)은 최고경영자상을 받았다. 정행장은 또 10월29일 「저축의 날」에도 정부로부터 현직 은행장으로서는 처음 훈장(은탑산업훈장)을 받는 영예를 안아 겹경사의 주인공이 됐다.
3년전 정행장이 은행장바통을 넘겨받았을 때 상업은행은 창립(1899년)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거래업체인 (주)한양의 부도, 명동지점사건 등 80년대부터 90년대초까지 터진 대형 금융사고에 상업은행은 감초처럼 끼어드는 불운을 안아야 했다.
그러나 정행장은 취임후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며 「부실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상업은행이 넘어야 할 첫번째 산은 다름아닌 「내부의 적」이었다. 잇딴 금융사고에 휘말리면서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패배의식마저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정행장은 이 때문에 취임후 휴일·휴가를 모두 반납하고 전 직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의식개혁작업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역설적인 방법이었지만 전 점포를 돌아다니며 후배 행원들에게 「누가 은행을 더 빨리 망하게 할 수 있는지 시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점심시간에 고객돌려 보내기, 바쁠때 찾아오는 고객에게 「제가 지금 놀고 있나요」라고 대꾸하기, 부실거래업체에 돈 빌려주기 등 은행을 하루빨리 망하게 하는 방법을 모아 책자로 만들어내도록 했습니다』
정행장은 또 「사고제보제도」를 도입, 직원들에게 거래업체의 부실징후나 부실대출계약을 신고토록 하고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는 절대로 따르지 말고 모두가 은행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자』고 당부했다. 도입당시 직원들간의 불신풍토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거센 비판도 있었으나 정행장 자신부터 청탁을 배제하는데 앞장섰다.
정행장은 『상업은행이 작년부터 계속된 유원 우성 덕산 효산 건영 등 대형건설업체들의 부도사태속에서 단 한푼도 물리지 않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말한다. 덕분에 93년 부실규모가 7,603억원, 당기순이익이 73억원이던 상업은행의 부실규모가 5분의 1(1,571억원)로 줄고 당기순이익은 11배(793억원)로 늘었다.
정행장은 95∼96년 「경쟁력회복기간」을 끝내고 97∼98년 2단계 경영전략으로 「일등은행 만들기」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은행이 고객에게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도록 고객중심의 수평조직으로 만들고 전산서비스체제를 혁신, 국내은행중 가장 편리한 은행이 되도록 할 예정이다.
정행장은 『상업은행이 단기간내 꼴찌은행에서 최고의 은행으로 올라선 것은 전 직원이 일치단결해 이뤄낸 성과』라며 『앞으로도 경영혁신에 박차를 가해 은행설립 100주년인 99년부터 2001년까지는 세계 50위권 은행에 진입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유승호 기자>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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