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합성마약,향정신성물질…/환청·환시·피해망상증/내성 생겨 갈수록 복용 늘려야『작은 벌레들이 온몸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것 같아요. 피부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들 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히로뽕 환자 이모씨(여·20)의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피부속으로 파고드는 「벌레」를 잡으려고 송곳이나 칼 볼펜 등으로 자신의 살을 후벼팠기 때문이다. 얼굴에도 온통 볼펜으로 찌른 검은 점 투성이다.
히로뽕 중독자 박모씨(28). 『자꾸만 집천장에서 무전기로 도청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며칠간 환청이 계속되자 참을 수 없게 된 박씨는 도끼로 천장을 부수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날도 소리가 계속되자 박씨는 급기야 식칼을 들고 아파트 윗집으로 올라가 문을 마구 부수고 주인에게 칼을 휘둘렀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상동증도 전형적인 환각증세다.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이틀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화투로 운세 떼기만 하는가 하면 며칠동안 반복해 라디오를 분해·결합한다.
마약으로 인한 환각증세는 환촉 환청 환시 상동증 외에도 의심증 편집증 피해망상증 등 다양하다. 누군가 자신을 해코지하려 한다며 차를 몰고 서울에서 경주까지 도망을 가는가 하면 아내가 바람을 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밤새 몽둥이를 들고 담밖에서 지키기도 한다.
마약류는 크게 천연마약과 합성마약, 향정신성 물질, 대마로 나눌 수 있다. 헤로인 모르핀 코데인 등 아편류와 코카인은 천연마약에 속하고 메사돈 염산페치딘 등은 합성마약이다. 향정신성 물질로는 흔히 히로뽕이라고 불리는 메스암페타민 과 바르비탈 메스칼린 LSD 등이 있다. 이들 마약류는 공통적으로 중추신경을 억제하거나 흥분시키지만 효능은 조금씩 다르다. 아편류는 도취감을 느끼게 하면서 신체 조정력을 잃게 하고 코카인은 정신적 흥분과 혼동, 히로뽕은 환시 환청 의심증, 대마는 도취감과 환각 효과를 나타낸다.
지속시간도 마약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히로뽕이 12∼34시간으로 가장 오래 약효가 지속되고 메사돈 12∼14시간, LSD 8∼12시간, 아편류 3∼6시간, 대마 2∼4시간, 코카인 2시간 이다.
마약복용시 나타나는 증세는 종류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호흡과 심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가며 식욕부진 발한 동공이완 근육이완 등이 나타난다. 정신적으로는 피로감을 감소시키고 정신을 맑게 하며 안도감과 함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러나 중독이 심해질수록 말이 많아지고 초조해지며 불안 및 과민상태에 빠지게 된다. 의심증 편집증 환청 환시 환촉 의처증 피해의식 등도 나타난다. 감정이 쉽게 격해져 폭력적이 되는가 하면 나른해져 매사에 의욕을 잃는다. 내성이 생기므로 회수가 거듭될 수록 용량을 늘려야 한다. 중단하면 며칠간 피로 수면장애 악몽 등 금단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수개월 정도는 우울증 신경과민 등이 지속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경빈 박사는 『마약의 무서운 점은 완치가 힘들다는 것』이라며 『상태가 나아져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소량만 복용하면 예전의 병리현상이 다시 나타난다』고 경고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처벌만 있고 치료는 없다/발견 즉시 신고의무때문 병원도 도움주기 힘들어/대부분 일반교도소 격리뿐/재활교육은 기대 못해
「처벌이냐, 우선 치료냐」
국내에서 마약중독자들이 매년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마약대책이 딜레머에 빠져 있다. 응분의 처벌을 우선하자니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고 치료를 우선하자니 적발과 처벌이 어렵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마약정책은 처벌 중심이었다. 마약사범을 발견하면 즉시 수사 당국에 신고해야 하며 중독자는 치료에 앞서 취조와 처벌을 받아야 했다. 경찰은 치료보다는 어디서 마약을 입수했고 누구와 함께 투약했는지 등을 캐는데 치중한다. 전문치료기관에서의 치료는 최종적인 절차일 뿐이다.
안양신경정신병원 진태원 박사는 『마약중독자에 대한 신고의무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중독자들이 찾아 와도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개의 중독자들은 처벌이 두려워 병원이나 상담기관을 찾는 것을 기피한다. 혼자 괴로워 하다 치료 기회를 놓치고 결국 마약의 수렁에 더 깊이 빠져 들게 되는 것이다.
마약사범중 초범이거나 중독상태가 경미한 경우에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22개 정신병원에서 위탁 치료를 받게 된다. 국립서울정신병원 오동렬 과장은 『병원 치료기간은 보통 3개월에 불과한데다 수사를 위해 계속 불려 다니므로 근본적인 치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결국 공주의 치료감호소로 보내지고 나서야 체계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치료감호소에 가는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대개의 마약사범들은 일반 교도소로 보내진다. 따라서 단순한 격리차원 이상의 치료는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결국 이들은 출소하자마자 다시 마약에 탐닉하게 된다.
재활프로그램에도 문제가 있다. 치료감호소에서의 치료기간이 너무 짧고 프로그램도 체계적이지 못하다. 오과장은 『외국의 경우 쇠창살까지 설치, 장기간 외부와 격리된 상태에서 체계적인 재활교육을 받는다』면서 『우리는 치료기간이 보통 3∼6개월 밖에 되지 않아 퇴원후 쉽게 다시 마약에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 김경빈 박사는 『중독자 치료를 위해서는 강의와 토론, 장기간의 관찰 등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며 『단순한 격리만으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히로뽕 경험 현진영씨/“가수로서의 내 삶 모두 잃었어요”/출소하자 또 유혹… 그러나 이젠 자신감
대마초 상습흡연과 히로뽕 투여 혐의로 3차례나 구속된 가수 현진영(25). 히로뽕의 마수에 걸려 10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지난 8월 출소한 그는 『히로뽕의 유혹을 떨치기 위해 그동안 혀를 깨무는 고통을 겪었다』고 말한다.
중학교때 어머니를 여의고 학교마저 중퇴한 그는 이태원 등지의 밤무대에서 댄서로 일하다 90년 그룹 「현진영과 와와」를 결성해 「슬픈 마네킹」을 발표,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흐린 기억속의 그대」와 「두근 두근 쿵쿵」을 연속 히트시켜 스타덤에 올랐지만 히로뽕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말았다.
그가 처음 손을 댄 것은 대마초. 그러나 문제는 히로뽕이었다.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돼 물의를 일으킨 뒤 재기에 몸부림치던 93년 초 아버지가 심부전증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마저 내곁을 떠난다면…』 눈앞이 캄캄했다. 돈이 들어 오는 대로 아버지 병원비를 충당하기에 바빴다.
마음 고생이 심할 때 중학교 친구 1명을 운전기사로 채용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히로뽕을 한번 해봐라. 괴로움을 다 잊을 수 있다』 이미 대마초를 피워 본 경험이 있는 그는 『마약을 한다고 해서 잊혀질 일이 아니다』며 유혹을 뿌리치다 덫에 걸리고 말았다. 친구는 꼬투리를 잡아 신용카드를 마구 쓰고 돈도 뜯어 갔다. 친구와 결별하고 이후 6개월 동안 히로뽕을 끊었다. 아버지도 퇴원해 안정을 되찾았다. 어느날 그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공짠데 한번 해보라』는 유혹에 또 넘어가고 말았다. 결국 93년 11월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지난해 10월 또다시 붙잡혀 실형을 살았다. 이때 이를 악물고 히로뽕을 끊을 결심을 했다. 지금도 그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 『출소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주위에서 벌써부터 유혹의 미끼를 던져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의연해질 수 있습니다. 결코 「립 싱크」가 아닙니다』
변호사를 통해 만난 양모 주혜란씨(48·「스톱 AIDS 운동본부」 회장)가 큰 힘이 되고 있다. 현재 서울 논현동 양모집에 살고 있는 그는 여건만 허락된다면 마약퇴치 운동에도 적극 동참할 계획이다.<김성호 기자>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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