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서 호기심에 시작/나도 모르는새 어느덧 중독/술집·사창가 전전 주사맞고 나중엔 친구·선후배까지 유혹/“손떼면 신고” 협박 시달리다 환각상태 행패 끝내 치료감호/“그래도 끊을 자신 아직…”지방 대도시의 한 시장에서 의류도매업을 하던 K씨(51)는 올해 정부가 지정한 마약류 중독자 전문병원인 국립서울정신병원에 입원해 3개월동안 치료를 받았다.
K씨가 마약에 처음 손을 댄 것은 약 5년전. 동네 구멍가게에서 시작한 사업도 기반이 잡혔고 1남1녀의 자녀도 남부럽지 않게 성장, 모든 것이 안정됐지만 왠지 모를 중년의 허탈감이 밀려들던 시기였다.
91년 2월 어느날 단골고객인 박모씨와 카페에서 술을 마셨다. K씨는 박씨를 인근 군청소재지의 소매업자로만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박씨는 『취하지않게 하고 숙취도 없애 주는 약이 있다』며 하얀 가루를 맥주에 타주었다. K씨는 이것이 히로뽕이라는 것을 직감했지만 『한번인데 뭘…』하는 생각에서 받아 마셨다.
『처음에는 헛구역질이 나고 어지럽더니 조금 지나니까 평소보다 술이 엄청나게 당기면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마셨는데 취하지가 않더라구요. 세상에 부러울 것도 없고 20대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었어요』
K씨는 그후 2년여동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3개월에 한번꼴로 0.1∼0.5g의 히로뽕을 박씨로부터 구입, 주사를 하거나 코로 흡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K씨는 투약 회수와 간격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94년 들어서는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주사를 맞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중독이 심해졌다. 뒷골목 술집과 사창가를 전전하며 윤락녀와 히로뽕 주사를 맞기도 했다.
『약효가 떨어지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적으로 보였어요. 갑자기 누군가 밥에 독을 탔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밥상을 엎고 방바닥에 도청장치가 돼있는 것 같아 방마다 장판을 전부 뜯어내곤 했어요』 그러면서 K씨의 사업과 가정은 엉망이 돼갔다. 히로뽕 구입에 들어가는 돈도 돈이었지만 극도의 조울증에다 바싹 마르고 병색이 완연해진 모습 때문에 정상적인 대인관계가 불가능해 지면서 거래처도 하나 하나 떨어져 나갔다. 현재는 조카가 점포 경영을 맡고 있지만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정도이다.
부인(45)은 신경쇠약에 시달렸고 지방대생인 아들은 『집에 있기 싫다』며 자원해 입대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딸은 아예 연락조차 끊었다.
『1년전부터 약기운이 다하면 의처증이 생겨 걸핏하면 아내를 때리고 아내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낮에 집으로 뛰쳐 들어온 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마약을 한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들킨 다음에는 아내에게 히로뽕을 탄 맥주를 억지로 마시게 한 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입원해 아내는 중독되지 않았어요』
K씨는 지난해 박씨의 요구에 따라 친구, 선후배들에게 직접 히로뽕을 팔기도 했다. 그들에게도 박씨가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수법을 썼다. 처음에는 술자리에서 공짜로 히로뽕을 주고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후 중독증상을 보이면 그때부터 돈을 받고 점차 값을 올려 불렀다. 이렇게 1년만에 히로뽕에 중독된 K씨의 한 고교후배는 부인에게 이혼당하고 직장도 잃었다.
K씨는 문득문득 『이게 무슨 짓이냐』는 자괴감이 들어 박씨에게 손을 떼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지만 박씨는 『당장 상습 마약복용자로 경찰에 신고하고 감방에 가 있는 동안 가족들도 그냥 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K씨가 입원한 것은 환각상태에서 저지른 행패 때문이었다. 집근처에 주차중인 승용차의 여성 운전자에게 느닷없이 『네가 어제 우리집에 들어온 도둑 아니냐』고 욕을 하며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놀란 운전자가 차를 몰고 달아나자 자신의 차로 뒤쫓아가 추돌해 경찰에 붙잡혔다. K씨는 법원에서 초범인 점이 인정돼 치료감호 결정을 받았다.
K씨는 『비록 마약전과자가 됐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치료를 받고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솔직히 말해 마약을 완전히 끊을 수 있을 지 아직도 자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사회에 복귀하면 전력이 있는 나를 마약꾼들이 가만 놔둘리 없습니다. 당장 나를 찾아올 겁니다. 요즘도 한달에 2, 3번은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나도 모르게 히로뽕을 찾아 이곳 저곳을 마구 뒤지고 있어요.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 지 두렵습니다』
◎마약조직 어떻게 움직이나/배타성 강해 믿을 수 있는 소수로 구성/거래땐 암호로만 연락… 판매대상자도 신뢰도 검증
마약조직은 다른 어떤 범죄조직보다 배타성이 강하다. 단 한번 거래에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수억∼수십억원대의 거액이 오가기 때문에 조직원들은 늘 「횡령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또 밀수·밀매행위 적발시 워낙 처벌이 엄격해 극도의 조직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연유로 마약조직은 정말 믿을 수 있는 소수로 구성·운영된다.
검찰과 경찰, 국가안전기획부 등 관계당국은 이렇게 4∼6명으로 구성된 마약전문 조직이 전국에 수백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폭력조직과 나이트클럽, 단란주점, 사창가 등을 통해 마약을 판매한다. 판매대상자는 여러차례의 「신뢰도 검증」을 거쳐 엄선한다. 평소 믿을 만한 관계가 아니면 처음 거래를 틀 때 꼼꼼히 매입자의 뒷조사를 하는 것은 물론 물건 인도를 위한 약속장소도 몇번씩 바꿔가며 매입자가 당국의 끄나풀이 아닌지, 또는 추적을 받고 있는지 여부를 철저히 확인한다. 매입자가 어리숙하다고 판단할 경우 약속장소에 폭력배를 보내 돈만 빼앗거나 가짜를 넘겨주기도 한다.
조직원들은 거래시 무선전화기와 호출기를 이용해 미리 정한 암호로만 연락하고 현장 상황을 서로 알려준다. 예를 들어 호출기에 「119」가 나오면 『경찰이 냄새를 맡았으니 빨리 도망치라』는 신호이고 「1818」은 『너 때문에 일이 잘못됐다』는 뜻이다. 호출기를 통해 전화연락을 하다 검거될 경우 조직의 위치가 드러날 것에 대비, 실제 전화번호가 아닌 「007」 등의 암호를 찍고 약속한 번호가 아니면 전화회신을 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마약 밀조업자들은 대학 직제로 세대구분을 한다. 해방이전 일본 군수공장에서 배운 기술자를 「총장」, 이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2세대를 「교수」, 2세대에게서 다시 비법을 넘겨 받은 사람을 「전임강사」, 어깨너머로 배운 사람을 「강사」로 각각 호칭한다. 90년대에는 「총장」이 대부분 사망한데다 80년대의 강력한 단속으로 「교수」들도 거의 검거돼 현재 국내에서는 주로 「강사」들이 저질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당국의 견해다. 우리나라가 최근들어 마약 제조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뀐 이유중의 하나다.
지난 9월 히로뽕 800g을 밀반입하다 당국에 적발된 한 조직은 5명이 같은 교도소에서 만난 「감방 동기생」들이다. 출소 후 다시 모인 이들은 서울에 오피스텔을 얻어 무역사무소 간판을 내걸고 중국에서 마약을 밀수, 밀매를 시작했다. 이들중 마약전과자가 수차례 중국을 드나들며 현지 밀조단을 찾아내 히로뽕을 샀고 「짐꾼」으로 불리는 운반책은 신발밑창 등에 이를 숨겨 들어왔다. 판매는 폭력전과자가 맡아 주로 자신이 몸담았던 부산의 폭력조직에 팔았다.
이처럼 철저한 역할분담도 마약조직의 특성이다. 때문에 한 조직원을 검거해 추궁을 해도 유입경로와 판로, 자금원 등을 한꺼번에 밝혀내 조직전체를 색출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마약조직이 단속망에 걸리는 것은 상당수가 돈을 둘러싼 내부갈등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관계자들은 『마약조직은 범죄조직 구성원간 「의리」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를 수록 판매대금의 분배문제 등을 놓고 조직원간 의심과 불만이 커지고 한번에 큰 몫을 챙겨 손을 씻으려는 배신자가 나타나 조직원을 당국에 밀고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유성식 기자>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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