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지니는 지리적 매력 중 으뜸은 도심을 에워싸고 있는 나즈막한 능선들이다. 전농동 삼성동 약수동 봉천동 등과 같이 우리 귀에 익은 서울의 동네들은 대부분 능선 위에 형성되었다. 물론 능선에는 언덕길이 생기기 때문에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능선은 「달동네」를 연상시키며 어려웠던 지난 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그러나 능선은 건축적으로 보아 장점이 많은 지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능선은 대도시 내에서 눈을 들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수평선을 만들어 준다. 능선이 그려내는 수평선은 도시의 인공적 수직선 사이에서 쉽게 흥분해버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대도시에서 능선은 넉넉한 물을 대주는 강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들은 「배산임수」를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가장 이상적인 지형으로 꼽았다. 예로 부터 물이 풍부하고 능선이 아름다운 동네 사람들은 어진 인심을 가져왔다.
이제 우리는 능선의 불편함을 다스리고 장점을 살릴만한 여유와 지혜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더 많은 집을 갖기 위해 능선 지우기에 열심이다. 수십m짜리 콘크리트 박스들이 능선의 나즈막한 윤곽을 가리고 있고, 이것들을 들여 앉히기 위해 속살 떼어내듯 능선을 잘라내고 있다. 그렇게 한번 사라진 능선은 다시는 우리 손에 돌아오지 않는다. 서울은 점점 멀리 눈길 한번 줄 곳이 없는 답답한 속박의 도시가 되어간다. 그 속에는 욕심쟁이들의 다툼만이 남을 뿐이다.
서울의 능선은 이 도시를 일구어온 중산층이 뿌리박고 살아오던 「터」이다. 아침에 능선의 포근한 자락에서 나와 저녁에 다시 그 자락으로 들어가는 일상생활의 은근함은 서울이 갖고 있던 참 괜찮은 매력이었다. 건축가들이라면 누구나 저 아래 사거리의 사람 사는 모습을 내려다 보며 저녁밥을 지을 수 있는 능선 위에 집을 짓고 싶어한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능선 지우기는 건축가들의 희망은 철저히 배제된채 경제논리에 의해서만 마구잡이로 진행되고 있다. 능선을 지움으로써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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