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제도개선특별위에서 여야가 통합선거법중 연좌제에 의한 당선무효와 자원봉사자제 폐지, 선거사범에 대한 공소시효 4개월로 단축 등에 합의한 것은 참으로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현역의원들의 선거편의와 계속 당선을 위해 공명선거의 핵심 장치를 없애기로 한 것은 정치적 야합이며 제도의 개선이 아닌 개악이다. 한마디로 국민을 배신하고 우롱하는 처사로서 여야는 즉각 합의를 취소, 백지화해야 한다.도대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란 이름의 통합선거법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불법부정을 획기적으로 막고 처벌하는 선거의 혁명 없이는 정치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국민의 열화같은 여망에 의해 돈 안들이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기 위해 여야가 모처럼 합심,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영국의 선거제도를 전폭도입한 것 아닌가.
새선거법의 알맹이는 공영제 확대, 법정선거비용축소, 자원봉사자의 선거운동, 선관위의 선거비용 실사권 부여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은 선거사무장, 회계책임자 및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선거법위반에 대해 당선무효를 규정한 연좌제다. 영국은 113년전부터 연좌제실시로 선거부정을 막았고 오늘에도 이 조항은 영국이 자랑하는 공명선거의 최대 철퇴장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94년 3월14일 여야가 새선거법을 「선거혁명과 정치개혁을 위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며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김영삼 대통령이 다음날 이례적으로 정치개혁법서명·공포식을 갖고 선거부정을 끝까지 추적, 실격시킬 것이라고 공언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불과 2년반만에 단 한번도 실격시켜 보지도 않고 연좌제를 폐지하고 공소시효를 6개월서 4개월로 줄이기로 한 것은 정치개혁을 스스로 포기하고 과거처럼 금품선거 부정선거를 멋대로 하고 하루라도 빨리 검찰수사에서 벗어나겠다는 반민주적·반국가적인 컴컴한 속셈인 것이다.
하기야 김대통령이 4·11총선직후 여러명이 당선무효될 것이라고 예고했음에도 정부, 검찰은 이미 새선거법정신을 유린했다. 즉 선관위가 선거비용초과혐의로 고발한 20명의 의원(이중 11명이 연좌케이스)을 거의 무혐의로 처리, 과거처럼 「당선되면 그만이고 흐지부지」를 재연, 국민을 분노케 했던 것이다.
이제 여야는 국민앞에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금품선거·부정선거로 돌아가겠다면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지 말고 구선거법으로 환원해야 하며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면 연좌제 폐지 등의 합의를 전면취소하고 오히려 벌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영국식 제도의 도입을 주창했던 김대통령은 즉각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또다시 퇴색되고 실종되려는 대표적인 정치개혁이 살아 있음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연좌제를 삭제, 선거법을 종이호랑이로 만들고도 정치개혁을 자랑할 것인가. 국민은 옛날의 어리숙한 국민이 아니다. 국민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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