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철학과를 졸업했다 하여 가끔 장난삼아 주변 친구들이 사주나 관상을 보아달라고 청을 넣는다. 그러나 내겐 장난삼아라도 그런 것을 보아줄 재주가 없으니 늘 미안할 따름이다. 혹가다 억지로 장난을 걸면 나도 어쩌다 억지로 엉터리 당사주나 손금이나 관상을 보아주기도 하는데, 들은 풍월이 짧아 그저 눈치껏 상대방의 비위나 맞추어줄 뿐이다.군대시절에는 그런 엉터리 손금이 소문이 나서 나중에는 연대장에게 불려가는 일까지 생겨 정말 혼이 났던 적도 있다. 다행히 당번병인 고참으로부터 연대장의 신상에 대한 몇가지 중요한 귀동냥을 하였기에 가까스로 위기를 면하기는 했지만, 그후로는 절대로 「장난 삼아」조차 하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을 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상하게 그런 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옥보살이니 족집게니 처녀도사니하는 광고가 버젓하게 신문에 실리고, 때로는 김일성의 사망일을 맞췄다하여 유명해진 사람도 있는 형편이다. 시절이 하수상하다보니 자신의 운명과 미래에 불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터이고 그런 불안이 이런 현상을 낳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긴 요즘 같은 세월에야 어디에다 등을 기대야할 지, 무엇을 믿어야할 지 알 수가 없긴 하지만.
내가 엉터리 관상을 보아줄 때 언제나 사람들에게 해주는 한 마디가 있다. 『우리 모두의 운명이 모이면 당신의 운명도 보인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의 얼굴이 모이면 당신의 얼굴도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인이 가진 운명적 차이는 큰 것 같지만 사실은 한 집단으로 보자면 거의 같은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의 얼굴은 어떤가. 한마디로 오랜 분단과 독재로 비틀어지고 꼬여지고 삐딱해진 얼굴이다. 태어나자마자 반쪽에 대한 증오를 배우기 시작하여, 「하면 된다」와 「해도 안된다」는 극단적인 논리, 공격성과 한탕주의, 과시욕과 냉소주의 등 군사독재의 그늘 아래서 수십년간 배어버린 그 표정이 바로 우리의 지금 얼굴이다.
이런 얼굴들 속에서 자기 혼자 팔자 좋은 관상을 가지기란 어렵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서 「얼굴 바로 세우기」부터 힘써야할 지 모르겠다. 그 첫째 길이 민족화해와 통일이며, 둘째가 완전한 민주화이다. 김일성의 사망일을 맞추는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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