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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국가가 되려면/최종고 서울대 교수·법사상사(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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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국가가 되려면/최종고 서울대 교수·법사상사(한국논단)

입력
1996.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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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대중문화와 모방문화의 범람속/각고의 노력없이는 민족문화 물거품될 것내년이 「문화유산의 해」가 아니더라도 진정 문화국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다시 제69조에서 민족문화 창달에 노력해야 할 대통령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적 위임을 우리는 대통령과 함께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가? 군사통치 때는 국방과 경제건설의 명분으로 소홀했다고 치더라도 문민정부가 말기에 이른 지금은 어떠한가? 경복궁을 복원한다고 구중앙청 건물을 서둘러 철거한 것까지는 이해한다 해도 국립박물관의 졸속처리는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며, 석굴암 등 각종 문화재에 이상이 생긴다는 뉴스는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 불국사 석굴암 종묘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기뻐한지가 언제인데, 바로 이들 문화유산을 위협하는 골프장 공사가 진행되어 뜻있는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으니 이 나라 정책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물론 이른바 개발독재의 후유증으로 문화재와 환경보존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고, 경주의 고속전철 통과문제로 부처간 의견대립이 있었던 것도 알고 있다. 이 시점에 우리나라가 문화국가로 가기 위하여 어떠한 각오를 해야 하며, 때로는 눈앞의 경제적 이익도 희생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래도 그것이 국가의 먼 장래를 위해 유익한 길이요, 그길을 헌법은 바르게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국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기틀이 바르게 놓여져야 한다. 문화재보호법 뿐만아니라 문화예술진흥법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 공연법, 영화법, 방송법 등 다수의 법률들이 문화국가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문화선진국들에 비하면 학·예술원의 위상을 비롯하여 아직도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들이 많이 있다. 지금쯤은 이를 총체적으로 연구 검토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둘째는 법제만이 아니라 운영에서의 합리적 방식인데, 특히 무형문화재같은 제도는 잘만 운영하면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국가적 면모이다. 이른바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은 이들은 더욱 사명감을 갖고 자신의 무형문화를 면면히 전승하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며, 국가는 이들을 정성들여 보살피고 지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셋째로는 이러한 문화진흥을 위해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독일은 통일되기 전에도 연방예산의 2%이상을 문화예술에 할애하였다. 결국 독일통일은 이러한 문화력의 소산이었다. 우리도 분단국가로서의 국방비를 감안하더라도 전체 예산의 0.5% 밖에 안되는 문화예술비를 최소한 갑절인 1%선으로는 올려야 할 것이다. 사실 문화예술분야만 하더라도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를 중심으로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문화재관리 예술원 문화원 그리고 각 종교단체 등 실로 많은 기관과 프로그램이 있다. 이러한 분야가 풍부하게 발전될수록 문화국가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결국 이러한 문화기관과 문화산업을 풍부하게 승화시키는 것은 국민의 문화의식과 문화역량이다. 밥그릇 하나도 결을 가꿀 때 문화가 생기고 아무렇게나 먹는 도구로 생각할 때 문화는 스러진다. 빗나간 대중문화와 유치한 모방문화의 범람 속에서 고급문화를 발전시키려는 정신적 각고를 쏟아붓지 않으면 민족문화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문화유산의 해를 맞으며 정부는 문화체육부의 명칭을 포함하여 문화재관리국을 문화재청으로 승격시켜 총체적으로 문화국가적 좌표를 점검하고 국민의 문화의식을 고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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