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한 풍자와 광기/번득이는 세상읽기음산하고 황량한 무대 위에 파격과 실험을 펼쳐온 76단(대표 기국서)의 창단 20주년 기념작 「지피족」이 공연되고 있다. 「지피족」은 「지하철」의 「지」에 「여피」「히피」 등의 「피」를 합쳐 만든 말로 지하철에서 살아가는 부랑인을 가리킨다. 소외된, 어쩌면 자유를 찾아 스스로 추방된 족속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3류 영화를 찍는 지하철 역. 예술한답시고 폼 잡는 야비한 감독과 별 볼 일 없는 엑스트라들, 행인과 미친 걸인 등의 경험 혹은 상상이 삽화처럼 연결되는 옴니버스 연극이다. 76단이 91년에 공연했던 「지피족」의 줄거리를 틀 삼아 그 안에 76단 레퍼토리인 「빵」, 「햄릿 5」, 「점」, 「미친 리어」를 끼워넣었다. 각 작품은 풍자, 조롱, 연민, 광기로 채워져 있다. 이는 곧 기국서와 76단이 세상을 읽는 방법이기도 하다. 가끔 말장난이나 잠꼬대 같은 대사들이 나오다가 막판에는 아예 횡설수설로 발전한다. 주절주절 쏟아지는 말 안되는 말, 혹은 미친 리어의 대사를 파편처럼 맞으면서 관객들은 거꾸로 침착하게 묻는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냐」.
기국서씨의 답. 『극적 결론이란 없다. 이 시대 자체가 종잡을 수 없고 횡설수설 아닌가. 언더(under·지하)적 풍경은 계속된다. 연극에 왜 마침표를 찍어야 하나. 점점 무너지고 파멸하고 미쳐가는 것들 가운데 꽃이 핀다』
연기는 탄탄하다. 단, 「빵」 「미친 리어」를 끼워넣는 연결 방법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거슬린다. 옴니버스 형식은 한 편씩 따로 볼 수도 있지만 한 꾸러미로도 엮을 수 있게 유기적 연관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12월17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매일 하오 4시, 7시. 12월9일 쉼. (02)3672-1991, (02)741-3391<오미환 기자>오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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