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가 30% 채택료 오고가/교구재 비싸게 사주고 커미션 수수/업자,교장·교육청에 정기상납도학교가 납품비리로 병들고 있다. 학습지 참고서 교구재는 물론 학용품 수학여행 교복에 이르기까지 「채택료」가 따라다니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대전의 K초등학교는 최근 학교측이 출판업자와 결탁해 글짓기 교재를 판매한 의혹으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 시끄러웠다. 교사가 사설단체인 한국안보교육협회의 「통일교본」을 사도록 학생들에게 은근히 강요했다는 것이다. 교본 판매를 맡은 K출판사는 교육청에서 미리 빼낸 실적독촉 공문 사본을 첨부, 『곧 교육청에서 대상 학년을 확대한 새 공문이 내려갈테니 전아동이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서신을 주임교사들에게 보냈다. 학부모들은 『「남북한 생활상 비교문 쓰기」를 전교생에게 과제로 내 교본판매를 조장했다』며 『학교가 업자로부터 커미션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교육청과 업자의 결탁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대전시 교육청은 6월말 관내 초등학교에 『한국안보교육협회의 「남북한 생활상 비교문 쓰기」에 학생들을 최대한 참여시키라』는 공문을 보낸 데 이어 10월17일까지 3차례나 더 공문을 보내 참가학생을 늘리도록 독려했다.
지난 5일 서울 시내 15개 초등학교에서는 교장과 서무직원이 생산업자와 결탁, 실물화상기와 액정화면 등 과학기자재를 구입하는 대가로 150만∼700만원의 사례비를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에는 조달청 공무원까지 개입, 납품계약을 주선해 주고 700만원의 뇌물을 챙겼다.
학습지 선정에도 막대한 채택료가 오간다. 대구의 경우 상당수 인문계 고교가 방송수업 등을 명목으로 학습지 구입을 강요해 말썽을 빚었다. 학교측은 강매사실을 숨기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형식적인 동의서를 받기도 했다. 학습지 가격 11만원중 30% 가량이 채택료로 학교에 돌아 왔다고 교사들이 증언하고 있다. 『한 학급이 60명, 학년별 15개반이므로 채택료가 학교전체로는 9,000만원가량 된다』고 B교사는 말했다.
대구의 학습지 시장이 70억원대에 이르고 있어 최대 20억여원이 채택료라는 계산도 가능하다. 실제로 경북 Y고는 94년 130명분의 주간학습지를 구입, 312만원의 채택료를 받았다. 교사들은 대개 채택료의 60∼70%는 담임들이 나눠 갖고 나머지는 학교운영자금과 복지비로 쓴다고 말했다. 대전 L출판사 전영업부장 K씨는 『교장 교감은 물론 교육청 공무원들에게도 학기초와 명절때 정기적으로 봉투를 건넨다』고 말했다.
참고서 채택료도 고질적이다. 서울 강남의 B고에서는 학기초 D출판사 참고서를 채택해 준 대가로 교사들에게 30만원씩의 돈봉투가 돌았다. 이학교 K교사(31)는 『교과담임들이 부교재를 선정하면 업자가 학생수를 파악, 20%정도의 채택료를 갖다 준다』고 밝혔다.
교육청의 교구재 일괄구입에도 커미션이 오간다. 9월초 불거져 나온 전남지역 교구재 구입비리가 대표적인 예. 해남교육청은 7월 학교측과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4억여원을 들여 D문화사의 세계대백과사전과 실물화상기 등 교구재 20종을 시중보다 높은 가격에 일괄 구입, 일선학교에 배포했다. 장흥 강진 무안 신안 교육청도 사정은 비슷했다. 비리의혹이 제기되자 해남교육청은 관내 40여학교에 『6월말에 교구재 일괄구입을 요청한 것처럼 서류를 작성하라』고 지시, 비리를 은폐하려했다. 교구재 구입에 대한 선정위원회의 사전심의가 무시된 것은 물론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쌌다. 교사들이 D문화사 본사에 확인한 백과사전의 할인가격은 93만원. 구입가인 180만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학교가 특정 교복업체와 결탁, 교묘한 방법으로 교복구입을 강요하는 일도 있다. 서울 강서구 K고는 신입생 소집일인 2월 중순 갑자기 『자주색 니트 조끼를 입으라』며 H교복사를 소개했다. 그러나 H교복사는 『조끼만 별도로 팔지 않으니 교복을 사라』고 억지를 부렸다. 학부모들은 『학교측이 선정비를 받고 H사에 특혜를 준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학교앞 문구점들이 교사에게 20∼30%의 채택료를 주고 물감과 스케치북 등을 독점판매하고 문구상이 수업시간에 방문판매를 하기도 한다. 올4월 대전 D초등학교와 충남북 30여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중 문구상이 교실에 들어와 시중보다 1,000∼2,000원 비싼 가격에 서예용 붓 등을 팔았다. 수학여행이나 학생수련회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6월 전남 Y고는 설악산 C모텔과 1인당 하루 1만2,000원에 단체계약을 했다. 그러나 교사들이 여행사에 확인한 결과 1인당 9,000원에 이면계약한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청까지 채택료 비리에 개입하고 있어 근절이 어렵다. 대구 모중학 P교사는 『채택료 거부운동을 벌여도 학교―업자―교육청간 연결고리가 워낙 단단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문제가 되면 교사만 징계를 당한다』고 말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교육비리 원인과 대책/교사들 낮은 보수와 처우에 학부모 이기심 얽혀 비롯/도덕성 회복·교육환경 개선돼야
교육현장에서 촌지나 찬조금 등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천직을 포기한 일부 교사와 열악한 교육 환경, 학부모들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참교육 시민모임」의 이정섭 사무처장은 교사들이 촌지의 유혹에 빠지는 첫째 요인으로 낮은 보수와 처우를 꼽았다. 또 공식적인 학교 예산으로는 수시로 필요한 학교시설 개보수비나 교직원 회식, 각종 행사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후원회 등을 통해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는 악습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영등포 J고의 C교사는 『일반기업체의 경우 입사후 15년 정도가 지나면 부장 정도의 직책도 주어지고 수입도 괜찮다』며 『그러나 교사들은 월급도 적은데다 평교사로서 오로지 사명감 하나로 버텨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영등포 U초등학교 J교사는 『사소한 교내행사 등에도 상당한 액수의 돈이 필요하지만 예산에 잡혀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며 『체육대회를 해도 교사용 체육복 구입비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학부모에게 손을 벌리게 된다』고 털어 놓았다.
자기 자식만 잘되기를 바라는 학부모의 이기심도 교사들이 돈봉투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서울 강남구 H고 L교사는 『일부 극성 학부모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 촌지를 건네려 한다』며 『촌지를 받지 않고 학부모의 요구를 거부하면 「능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소문을 내 교사를 몰아 세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Y중학교 K교사는 『나혼자만 깨끗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라며 『다른 교사들이 촌지를 받는데 나만 거부할 경우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송대헌 교권법규국장은 『교사들에게 도덕적으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 『교사들의 도덕성 회복과 함께 교육환경에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돈봉투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조재우 기자>조재우>
◎어느 학부모의 수기/“아이 수업태도 엉망” 교사질책에/봉투 건네자 태도달라져 연례행사화/거절하는 담임 만났을땐 부끄러웠지만 마음은 개운
큰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시누이로부터 선생님을 대하는 처신을 「교육」받았다. 인사하러 가야 할 시기와 촌지를 주는 방법, 액수 등이었다. 며칠후 애 아빠는 출근전 5만원이 든 봉투를 불쑥 내밀었지만 막상 어떻게 전달해야 할 지 가슴이 떨리고 눈앞이 막막했다. 때마침 선생님한테서 청소를 도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청소는 도와드리지 못합니다』 라는 쪽지와 함께 3만원이 든 봉투를 아이편에 보냈다. 애를 보내고 나서도 마음이 찜찜했다.
큰애는 2학년에 올라가기 직전 전학을 했다. 3월8일께 학교에 갔더니 담임선생님의 표정이 곱지 않았다. 『아이의 수업태도가 엉망이다』 『교육경력 20년에 저런 아이가 공부 잘하는 경우는 한번도 못봤다』는 등 듣기 거북한 말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애를 얼마나 오랫동안 관찰했다고 저런 말을 하나」하고 내심 화가 치밀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봉투를 건네자 선생님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이 선생님에게는 꼭 인사를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4차례나 봉투를 건넸고 학급 간부 엄마들이 담임선생님께 식사대접하는 자리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5학년 학기초에 연례행사처럼 봉투를 담임선생님께 내밀었다가 거절당했다. 처음있는 일이었다. 선생님께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손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개운했다. 5학년이 끝날 때 정말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표시를 했다.
작은 애가 4학년이던 지난해 담임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 1학기말 찾아가 『말썽꾸러기를 잘 돌봐주셔서 고맙다』며 구두표를 드렸다. 선생님은 그후 내게 식사대접을 하고 책을 보내주셨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서 보내신 것』이라며 과일을 보내기까지 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촌지를 주는 학부모들 때문에 고민하면서 교직에 대한 갈등을 느끼게 된다던 그 선생님. 버릇처럼 건넨 구두표 때문에 입었을 상처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 자신이 부끄럽다.
바라지도 않는 촌지를 거부하기 어려워 마지못해 받고, 돌려줄 시기를 놓치고, 그러다 보니 또 받게된다는 선생님들의 하소연. 촌지는 당연히 줘야 한다는 주변의 학부모들. 내 아이가 학교에서 혹시 불이익을 당하고 있지 않나하는 지레짐작.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학부모가 먼저 당당하게 바로 서기 전까지는 학교촌지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5학년인 작은 아이 담임선생님께는 아직 한번도 봉투를 건네지 않았다. 식사대접도 한번 못해 드렸다. 교단에 처음 섰다는 선생님을 망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학년이 끝날 때 따뜻한 식사대접이라도 하고 싶다.<장수경·가명·36·경기도 부천시>장수경·가명·36·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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