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간에 연락사무소 개설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의 재정형편이 지금 워싱턴에 남부끄럽지 않을 만한 시설을 갖춘 대표부를 개설할 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도 그럴 듯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워싱턴 북한연락사무소와 동시에 평양에 미국연락사무소가 설치될 경우 제일 먼저 북한사람들 눈에 띌 변화는 성조기와 미 해병대일 것이다. 다음은 암시장에 흘러 나올 미제물건과 달러다. 김정일정권은 남쪽의 경험을 통해 「미제」가 아닌 「미제」의 위력과 중독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더 겁내는 것은 연락사무소를 따라 들어갈 미국의 보도기관들일지 모른다. 이미 CNN방송이 교섭을 끝내 놓고 북·미간의 수교만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김정일정권으로서는 그때 가서도 막상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북한측의 보도통제를 따라 주겠지만 다른 보도기관과 경쟁이 붙을 때는 통제를 벗어나는 「사고」가 빈발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김정일정권은 얼마전 그 「사고」를 경험한 바 있다. 평양주재 러시아무역관에 무장 북한 병사가 난입해 제3국 망명을 요구하다가 북한군에게 사살된 사건이 그것이다. 김정일의 안방에서 발생한 이 반체제사건은 구소련시대 같았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됐을 일이다. 그러나 이 감추고 싶은 사건은 민주 러시아의 이타르 타스통신보도로 외부에 알려지고 말았다.
헌지커 송환을 위해 평양에 간 리처드슨 의원의 보따리 속에는 연락사무소 개설문제도 들어 있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한은 결국 미국의 손에 이끌려 조만간 개설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평양의 실체가 밖에 공개될 날도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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