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예상밖 신속처리로 관계개선 의지 보여/미 “막후거래 없는 인도적 조치” 애써 강조북한에 억류중이던 에반 칼 헌지커의 석방발표로 잠수함 사건이후 냉각돼온 북·미관계가 다시 해빙의 전기를 맞게됐다.
한국측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하고 있는 미국은 헌지커의 석방이 순전히 인도적 차원에서 취해진 조치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헌지커의 석방은 4자회담이나 제네바합의와는 전혀 별개의 인도적인 조치』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또 헌지커의 석방과정에서 막후거래가 없었음을 지적했다. 북한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말까지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부당하게 억류됐던 그가 당연히 풀려나는 것일뿐 사과는 당치도 않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지나치리만큼 건조하게 들리는 미국정부의 이같은 공식반응과는 달리 헌지커의 석방은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얼어붙은 북·미 양국관계를 진일보시킬 수 있는 촉매제로 작용할 게 확실하다.
여기에는 약 2년전의 선례도 있다. 미국은 94년말 북한에 의해 격추된 미군헬기 조종사 보비 홀 준위가 석방된지 한달이 채 못되는 95년 1월 북한에 대한 1단계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취한 바 있다.
미국은 그렇지 않아도 94년 10월의 제네바합의에 따라 2단계 대북 제재완화 조치를 취해야 할 입장이다. 그동안 미국이 고려해온 2단계 조치에는 ▲북미 은행간의 금융거래 허용 ▲미국기업의 대북한 간접투자 허용 ▲대북한 수출입 허용품목 확대 ▲미국적 항공기 및 화물선의 북한출입 허용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미국이 이같은 조치들을 취하기 위해서는 한국측의 양해가 필수적이다. 다시말해 현단계에서의 대북한 규제완화는 잠수함 침투사건에 대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를 위해 일본, 중국 등 한반도주변 이해 당사국들의 협조를 구해가며 북한의 사과를 유도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이번 사건과 같은 우발적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남북한 및 유엔사간의 핫라인 가동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한편, 잠수함 침투사건 초기 미 행정부가 「모든 당사자들」의 자제를 촉구한 사실을 상기하며 남북한이 상대방에 대한 「동시 사과」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재선에 성공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선물로서 미국의 헌지커 석방요구에 예상보다 신속하게 호응해줌으로써 대미관계 개선의 적극적인 의지를 과시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평양 지도부는 이번에도 한미간의 대북 시각차를 교묘하게 이용해 그들이 조장한 위기를 대미관계 개선의 호기로 전환하는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하다. 반면 미국언론은 25일 한미 양국이 이번 마닐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측이 잠수함사건에 대해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데 합의했지만 그들간의 불화를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 관리들이 이번 합의를 이끌어 내기위해 「상당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타임스는 김영삼 대통령이 잠수함 침투사건에 개인적으로 강한 감정을 드러내자 클린턴 대통령이 대북 정책에 불화를 드러내서는 곤란하다며 똑같이 강하게 나왔다고 전했다.<워싱턴=이상석 특파원>워싱턴=이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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