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와 있는 한 일본외교관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한국인들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내가 너무 검소하게 사는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비슷한 계층의 일본인들보다 훨씬 돈을 잘 쓰고 여유있게 사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집을 호화롭게 꾸미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 손님이 내 집에 올때는 방석 같은 것이 초라하지 않은지 살펴보게 된다. 최고급 식당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식사에 초대할 때도 신경을 써야 한다. 어떤 한국인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인생은 한번 사는 것인데 돈을 아꼈다가 가지고 가겠느냐」고 농담으로 넘겼다. 검소하게 사는 것이 몸에 밴 일본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인 일본의 고참 외교관이 한국인들의 소비수준에 위화감을 느낀다니 할 말이 없었다. 나에게 그의 지적은 따가운 야유처럼 느껴졌다.
이번 겨울을 도쿄(동경)에서 보내며 가끔 그의 말을 떠올리곤 한다. 도쿄의 집들은 좁고 춥다. 아파트들도 중앙집중식 난방이 아니어서 세대별로 난방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온풍기나 스토브를 최소한으로 가동하여 전기를 아끼고 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겨울이지만, 난방이 부족한 집은 거리보다 더 추워서 두꺼운 실내복을 입어야 한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한겨울에도 반소매 옷을 입고 지낼 수 있었던 한국의 아파트가 그립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렇게 기름을 마구 써도 되는지 걱정이 되는군요. 우리나라 아파트들은 난방을 좀 줄여야 겠어요』
일본인들의 생활이 나라의 경제력에 비해 매우 검소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막상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한국의 과소비가 광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의 총생산은 세계 총생산의 18%(94년)에 이르고, 1인당 GNP는 86년에 이미 1만달러를 넘어서 91년부터는 2만6,000달러선에 진입했다.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의 흥분과 자부심이 아무리 크다한들 이제 겨우 1인당 GNP 1만달러에 턱걸이하고 있는 처지에 흥청망청한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과소비를 들여다 보면 어떤 계층, 어떤 사람들의 문제이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비슷한 계층의 일본인들에 비해 더 여유있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들이 소득에 비해 더 소비하고 덜 저축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본의 가계저축률은 20%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78년부터 10%선으로 내려가 현재 14%정도인데, 우리는 20%선을 지키고 있다. 국내외의 가격차를 고려한 소비수준을 보더라도 미국 17.9, 일본 11, 싱가포르 10, 한국 6.4로 나타나 있다. 나라의 막강한 부가 고루고루 스며있는 일본인들의 탄탄한 생활수준과 소비수준을 우리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하지만 우리의 과소비는 규모로만 따질만큼 단순하지 않다. 벼락부자의 자기과시, 광범위한 부패구조, 불법적인 이득과 불로소득을 취하는 자들의 불안심리, 그들에 대한 중산·서민층의 증오와 저축의욕 상실등이 공격적으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과소비 현상이다. 그것은 낭비이상의 파괴력을 갖고, 증오와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전직대통령들은 어마어마한 뇌물을 챙겼다가 감옥에 갇혀 있고 현직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검은 돈을 안받겠다고 강조해왔으나 그의 비서나 장관들은 여전히 거액의 뇌물을 삼키고 있으니, 국민이 무슨 재미로 한푼 두푼 아끼겠는가.
일본의 화장실들은 대부분 손을 씻는 물이 변기로 흘러들어가 재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 개량변기를 볼 때마다 새 화장실을 때려부수고 몇천만원씩 들여 아파트를 수리하는 한국의 파괴적인 소비를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서 난폭한 부패와 난폭한 소비가 계속되는 동안 일본의 화장실에서는 손 씻는 물이 졸졸졸 변기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공포를 느낀다 해도 지나친 우려가 아닐 것이다.<이사대우 편집위원>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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