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무장공비침투와 관련, 그동안 대북 초강경정책을 견지하던 정부가 느닷없이 태도를 급선회한 한미정상회담의 합의는 싫건 좋건 앞으로 대북정책추진의 새 원칙이 됐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마디로 대북시각내지 응징방법에 있어서 이견을 보이던 한미 양국이 공조의 방향을 새로 설정한 것이다.하지만 새로운 방향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공조원칙은 앞으로 대북정책 추진에 적지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김영삼·클린턴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잠수함사건을 「불행하고도 용납할 수 없는 사건」임을 인식하고 특히 양국이 북한에 대해 수락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분명히 요구했으며 이를 이례적으로 공동발표문형식으로 공표했다는 점을 성과로 들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러한 인식과 안보공약 다짐이나 북에 대한 납득할 만한 조치요구 등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를 되풀이하는 대신 한국에 대해 미국이 의도한대로 제네바핵합의이행과 4자회담추진을 재확인시켰다. 선사과라는 강경정책으로 시인·사과와 재발방지약속을 경수로 지원과 연계시킨 한국의 강경자세의 고리를 푸는데 성공한 것이다. 한미정상회담과 같은 날 있었던 미일정상회담에서 잠수함사건에 대한 한국측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한반도 전체문제, 즉 한국의 해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소위 대북공조를 강조했던 미일이 그동안 우리 정부와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음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어쨌든 한미 정상의 합의로 한반도 사태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북한에 시인·사과와 4자회담을 분리시켜 운신의 폭을 넓혀 주고 4자회담 설명회를 통해 사과할 수 있게 했지만 과연 북한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미지수로서 과거의 예로 보아 낙관은 금물이다. 이른바 우리에게 수락할 수 있는 조치도 그렇다. 사과인가 단순히 흐리멍텅한 유감표명인가도 그렇고 사과대상을 한국 미국 또는 한미 양국에 할 것인가도 문제다. 한국은 「명백한 사과」를, 미국은 「제스처」를 강조한 바 있어 과연 양국이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숙제다.
북한은 잠수함사건 직후에는 비난여론에 눌려 조건없이 설명회 참석을 타진했었지만 일단 고비를 넘겼다고 보고 식량원조를 조건으로 내세울 가능성도 다분히 있다.
이제 김대통령이 귀국 후 무엇보다 국내적으로 할 일은 갑작스런 강경정책 철회로 어리둥절해 하는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자칫 대북정책의 중심 없는 란조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수로 지원과 4자회담 등을 잠수함 사건과 분리했지만 유엔안보리가 인정한 정전협정위반 등을 들어 북한에 대해 반드시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해야 한다. 또 이에 불응할 경우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경제협력 등 우리의 독자적 카드 구사로 큰 불이익이 돌아갈 것임을 분명히 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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