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금기” 속으론 “탐닉”/이중적 성규범 문제/성은 쾌락대상 아닌 인간관계 그 자체/청소년 ‘혼란상태’ 구체적 성교육 실시해야/저급한 상업주의 방지 제도적 장치 필요유부남 유부녀의 바람피우기에서 교사의 제자 성추행, 여중고생의 출산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는 성문제에 관한 한 갈 데까지 간 듯한 느낌이다. 음란물은 옛말이고 섹스숍 누드쇼도 낯설지 않다. PC통신을 통한 사이버섹스가 판치는가 하면 포르노전용영화관 얘기도 나온다. 기성세대도 청소년도 모두 성의 혼란에 빠져 있다. 최영애(45)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올바른 성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애써온 90년대 여성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91년 4월 상담소 개설이래 성폭력피해자의 상담과 성폭력관련 특별법제정에 앞장섰고 올바른 성교육을 통해 왜곡된 성의식을 바로잡고자 노력해 왔다. 오늘 우리사회의 성문제에 대해 의견을 들어본다.<편집자 주>편집자>
―드라마 「애인」 이후 우리사회는 「바람든 사회」 혹은 「바람난 사회」가 된 느낌입니다. 성문화라는 측면에서 우리사회를 진단해 주십시오.
『우리사회의 성문화는 한 마디로 혼란과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올바른 성교육이나 성규범은 없는 상태에서 서구사회의 저급한 상업주의적 성문화가 유입돼 쾌락위주의 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성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듯 성지상주의가 판치고 있는 느낌입니다』
―성폭력이 사라지려면 우리사회에 건전한 성의식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인 것으로 압니다. 건전한 성의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이라는 것은 단순한 쾌락추구나 상품화의 수단이 아닙니다. 성은 남성만이 가지는 소유의 개념은 더더욱 아니고요. 성은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에 대한 태도나 성 규범은 모두가 이중적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성문제를 매우 금기시하면서 비공식적으로는 탐닉하려 합니다. 여성에게는 억압적이고 수동적인 가치관이 강요되는 반면 남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것이 현실입니다. 애인신드롬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성의 객체에 머무르고 있던 여성이 성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데 따른 과도기의 충격같은 것이 아닐까요』
―청소년의 성문란이 위기상황에 이른 듯 합니다. 최근 여고생에 이어 여중생까지 「어이없는 출산」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청소년의 성문란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또래 안에서의 성문란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어른들에 의한 성폭력의 희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성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물어봐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문과 집을 나서면 온통 성을 부추기는 분위기와 접하게 됩니다. 비디오의 야한 장면이나 PC통신의 음란한 영상이 그들의 교과서가 되는 것입니다. 청소년 성문란은 중학생이 특히 심합니다. 아침에 누군가 음란잡지 한 권을 가져오면 학교가 파하기 전 전체 급우가 돌려봅니다. 심지어는 애무 옷벗기기놀이까지 벌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금기와 탐닉의 이중적 성규범이 만들어낸 결과지요. 하지만 여중고생의 출산문제는 또래내의 성문란보다 기성세대의 성폭력에서 비롯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아직 미성년인 이들은 어른들에게는 성폭력을 휘두르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기 때문이지요』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이 미약하고 그나마 순결위주로 이루어져 이같은 일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학교에서의 바람직한 성교육은, 또 가정에서의 대화는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성을 금기시하면 안됩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학생이 물어보면 교사가 「뭘 그런 걸 물어봐」하고 가족이 함께 TV를 보다 입맞춤이나 포옹하는 장면이 나오면 「가서 물 가져 올래」하는 식이어서는 올바른 성교육이 되지 않지요. 추상적이거나 애매하지 않게,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나이에 맞는 설명이 필요하겠지만요. 신체는 부끄러운 것, 은밀한 것이 아니라는 긍정적 관념을 심어줘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초·중등학교에서 1년에 4시간정도 하는 게 고작입니다. 「아이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긴다」하는 식이지요. 정자와 난자가 어떻게 해서 만나느냐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이같은 보건학적 생물학적인 교육수준을 벗어나야 합니다. 성교육을 정규교과목으로 채택하고 전담교사를 두는 게 시급합니다』
―남자고등학생에 대한 한 설문조사를 보면 70% 이상이 사랑하는 사이면 혼전에 성을 표현해도 괜찮다고 응답했습니다. 건전한 성문화를 이야기할 때 혼전 순결같은 것은 이제 진부한 주제가 된 느낌입니다만.
『청소년의 성표현을 어떻게 봐야 하고 또 어디까지 허용해도 좋은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금기시된 질문입니다. 무조건 순결을 지켜야 한다(특히 여성에게)하는 식보다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기성세대의 성과 청소년의 성중 어느 쪽이 더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또 우리 현실에서 올바른 성규범을 세우는 일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기성세대지요. 기성세대의 성은 문란한 쪽에 가깝지만 청소년의 성은 개방과 문란이 혼재된 양상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미성년자를 앉혀놓고 못하는 짓 없는 사람들이 여중고생 출산을 개탄하는 것은 이율배반적 태도가 아닐까요. 올바른 성규범을 정착시키기 위해선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성문제를 공론화하고 성의 상업화를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법적, 사회적 보호장치는 어떤 수준입니까.
『여전히 미흡하지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상담이나 보호시설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없이 아직 민간에 맡겨져 있는 수준입니다. 최근 국회에 상정된 관련법은 미성년자 성폭력을 비친고죄로 하고 직장에서의 성희롱조항을 포함시키는등 상당부분 개선되고 있습니다만』
―성폭력방지운동에 뛰어든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그동안의 보람이라면.
『평소 성문제가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잘 아는 분이 「강간위기센터」같은 것을 한 번 운영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권유를 했는데 이 문제가 당시까지 한 번도 공론화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긴 거죠. 상담소 개설후 지난 5년여동안 우리사회에 숨겨져 있던 성폭력문제를 사회문제화할 수 있었던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입니다. 현실에 바탕한 성폭력통계를 토대로 성폭력특별법 제정에 기여한 것도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김상우 기자>김상우>
□약력
▲51년 부산 출생 ▲70년 부산여고 졸 ▲70∼76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 ▲89년 이화여대 여성학과대학원 졸 ▲89년 한국자원봉사 능력개발연구회 연구실장 ▲91∼94년 성폭력특별법제정추진특위 위원장 ▲92∼93년 김보은 김진관사건 공동대책위 공동대표 ▲93년 서울대조교 성희롱사건 공동대책위원장 ▲90∼96년 홍익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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