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화장실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을 꼽으라면 나는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의 화장실을 든다. 변기나 세면대, 물비누 온풍기 등이 고만고만해서 시설이 남다른 것은 아니다. 주로 외국인 청중이 많은 날이면 줄서기가 달라진다.보통 공중화장실이면 변기가 있는 칸마다 줄을 서는데 이때면 바깥쪽에 딱 한줄로 선다. 한 칸이 빌때마다 한 명씩 들어가니 옆줄이 빠른가 신경쓸 필요가 없다. 기다리는 시간도 훨씬 짧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대개 이렇게 줄을 서던데 우리나라에서는 여기에서만 겪어보았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을 외국인이 많았던 때문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똑같이 외국인 청중이 많이 온 세종문화회관 화장실에 가보니 구성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화장실 형태의 문제이기도 했다. 예술의 전당 음악당 화장실은 ㅗ자 모양이어서 두 사람의 등이 닿으면 그만일 정도로 좁게 난 ㅣ줄 위에 변기칸이 두 열로 들어섰고 ㅡ자 형태로 길게 세면대가 늘어서 있다. 좁은 변기칸열과 넓은 세면대 공간이 바로 한 줄을 가능케 한 열쇠였다.
음, 시스템이 그대로면 행동을 바꾸기 힘들군― 이것이 첫번째 화장실의 법칙이다.
한번은 예술의 전당 화장실에 도착해보니 내가 첫번째로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두번째 사람이 나타나더니 안으로 들어가 칸 앞에 줄을 서려고 했다. 『이렇게 한 줄로 서는 것이 더 좋아요』했지만 그 사람은 막무가내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나타난 세번째 사람이 『이렇게 하면 차례대로 들어가고 순서도 더 빨리 와요』하고 역성을 들어주어서 한 줄이 유지되었다.
음, 아무리 좋은 방법도 지지자가 한명은 더 많아야 실현되는 군― 이것이 두번째 법칙이다.
우리 사회가 화장실 줄서기 같다고들 한다. 줄을 잘 서면 남보다 먼저 간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나만 뒤쳐질까봐 실천을 못한다. 교사한테 촌지를 바치고 수백만원씩 과외비를 쓰는 학부모들도 알고보면 다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에 올바른 시스템이 갖춰지고 옳은 방법을 실천하려는 그 한 명이 더 늘어나는 때는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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