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아메리칸 니들워크라는 퀼트학원을 운영하는 최숙영씨(30·서울 강남구 역삼동 618―14)는 2년전만 해도 두 아이들 뒤치닥거리에 정신없던 전업주부였다.대학졸업 후 바로 결혼했지만 남편은 병원수련의여서 한 달에 두어 번이나 집에 들를까말까. 기혼이 결격사유인지 취직도 되지않았고 생활은 서럽고 지루하기만 했다.
재미삼아 퀼트(천을 조각조각 이어 만드는 수공예)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바늘과 실로 차곡차곡 외로운 밤을 채워가던 그는 전문적인 솜씨와 지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지난해 6월 학원장, 또 여러 문화센터의 인기퀼트강사가 되었다.
취미생활이나 살림솜씨, 교육태도를 직업으로 만드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일상의 권태를 삭이고자, 살림을 더 잘 하고자 시작한 일들이 전문적인 기능과 지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생활을 직업화하는 데에 성공한 여성들이 가진 공통점은 일상생활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일 없이 거리를 다니거나 백화점 순례를 하지 않았다. 살림과 육아에 관심과 재미를 붙이고 「어떻게 더 잘할 수 없을까」라고 궁리하였다.
어린이를 위한 이중언어(Bilingual) 프로그램 학원 「프로 차일드」 원장인 신옥순씨(43·서울 송파구 가락동 패밀리APT)도 자신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다 이윽고 그 일을 직업으로 연결시킨 사례다.
78년 남편과 함께 유학차 도미, 의류심리학을 공부했던 신씨는 잇달아 두 아이를 낳고 살림하랴 애 키우랴 공부를 포기해야 했다. 87년 귀국하자 당시 초등학교 2학년과 유치원생인 아이들이 한국어에 적응을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신씨는 두 아이는 물론 그 또래 아이들을 규합, 스터디그룹을 지도하면서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이중언어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아이들의 학교에 명예교사로 봉사하며 이중언어교육이 언어능력 조기개발에도 효과적임을 확신하고 그 사이 미국 신시나티의 자비어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공부도 하고 결국 94년 학원을 열기에 이르렀다.
「아파트 요리선생」으로 불리는 오은주씨(31·서울 마포구 신수동 현대APT)는 『요리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아예 강사로 나섰다.
오씨는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결혼 후 양식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서양요리 서적들을 구해보며 독학, 요리실력을 쌓았다. 그의 요리솜씨가 아파트의 반상회, 동창회에서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주위에서 요리강습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지금은 매주 서너팀이 강습을 받으러 집에 찾아올 정도가 됐다. 지난 9월 나온 「쉽고 재미있는 빵·과자 만들기」라는 요리책에서는 오븐요리 파트를 전담해 썼다.
주부들이 취미생활이나 살림솜씨를 일로 만드는 움직임을 정보전략연구소 윤은기 소장은 『가정과 직장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정보화사회의 한 특징』으로 파악한다. 윤소장은 『집안꾸미기나 요리, 육아, 내조 등 가사일을 창의적으로 해결하려는 프로주부가 늘어가는 것은 대단히 긍정적이며 이런 추세로 주부들의 사회진출도 갈수록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이성희 기자>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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