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어 가을은 또 찾아왔고 찬바람은 오늘도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비바람이 두어차례 더 왔다가 가면 가로수 이파리들은 모두 땅에 떨어지고 저 불쌍한 플라타너스는 연례행사처럼 수난을 겪어야 한다. 가지들은 사정없이 잘려나갈 것이고 그리하여 수도 서울은 살벌한 겨울을 맞는다.어느날 세돌짜리 손주를 안고서 가지 잘린 가로수 밑을 거닐고 있었다. 『할아버지! 나무를 왜 잘랐는데요?』 무심코 던진 그놈의 한마디가 나를 당황케 했다.
가로수는 왜 심었으며 어떻게 길러야 할 것이며, 가지 치는 일은 왜 하는 것이며, 어떻게 손을 봐야 옳은 것인가. 늦은 가을이면, 또 이른 봄이면 해마다 겪는 일인데 무슨 원수진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 어쩌면 그렇게도 잔혹하게 잘라내는가. 생각할수록 속상하고 나무 보기가 민망한 것인데 이것이 어찌 나만의 심정이라 할 것인가.
옛날에는 가로수가 보행자들을 위한 그늘 역할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도시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생각할 일이고, 나무도 풀도 우리의 이웃이라는 점과 그보다도 살아있는 것에 대한 사랑, 그것이 우선 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많은 나라를 다니면서 유심히 살피고 보았지만 우리 플라타너스처럼 볼품없이 잘려나간 풍경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
중국의 어떤 도시에서였다. 광화문 거리만한 넓은 길 양편에 100년도 넘었음직한 플라타너스가 늘어서서 커다랗게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정취가 참으로 좋았다. 파리의 생 미셸 거리라고 기억되는데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에서 애 어른 할 것없이 뒹굴고 노는데 그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밤에 비가 왔다. 아침에 나가보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다. 『역시 멋있는 나라구나』하고 감탄을 하였다.
이 가을 이맘때쯤 고향집 뒷산은 꿈같이 아름다웠다. 잡목림 골짜기는 낙엽으로 가득차고 솔바람 이는 숲에서 새들의 소리, 이끼낀 바위밑에 철모르고 피어있는 한두떨기 야생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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