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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감독들 ‘패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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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감독들 ‘패션시대’

입력
1996.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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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복 대신 정장 확산 ‘벤치의 멋’ 연출그라운드와 코트의 벤치를 지켜온 스포츠 감독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감독은 전장의 야전 사령관이다. 그러나 감독들은 승리의 찬사보다는 패배의 무거운 짐을 떠맡는 역에 더욱 익숙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스타 선수의 몫이고 그 그림자 뒤에 감독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감독들이 자기 색깔을 내며 무대의 전면에 당당히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경기장에서 선수와 감독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선수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이유로 감독들은 경기전 수염도 깎지 않았다. 유니폼도 똑같이 입었다. 그러나 스포츠 열기 속에 TV 스포츠 중계 시간이 대폭 늘어났고 선수들에게 쏠렸던 카메라 앵글도 서서히 벤치를 향하기 시작했다. 감독스타 시대가 시작한 것이다.

땀내 배인 트레이닝 복을 벗어 던진 선구자는 고려대 농구팀 박한 감독(51)과 전 현대건설농구단(현대전자의 전신)의 방열 전 감독(55·경원대 교수). 꼭 20년전인 76년 고려대 신임 코치로 지도자 첫발을 내디딘 박감독은 대학연맹전에 당시 일반인들에게도 파격적인 쓰리버튼 콤비 양복을 입고 나오는 일대 파격을 선보였다. 「코트의 쿠데타」였다. 그러나 그해 성적이 좋지않자 고려대 학보에 「성적은 못내면서 옷만 잘 입는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체육계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 그는 10년째 강남 체스터필드 양복점에서 매년 6∼7벌의 정장을 맞춰 입고 있다.

박감독이 개척자라면 방감독은 본격적인 패션 감독시대의 막을 연 사람. 방감독은 78년 실업연맹전서 당시 재계 최대의 라이벌인 삼성전자와의 경기서 넥타이를 갖춘 완벽한 정장 차림으로 실업무대에 첫선을 보였다. 방감독은 다소 어색하긴 했지만 스스로 자제력이 생기고 선수들도 덜 흥분하는 것 같아 이후 양복을 고집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방감독은 『구두를 신고 코트에 들어왔다』며 심판으로부터 테크니컬 파울을 당하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방감독이 정장 패션을 입고 80년에 창단 첫 우승을 하자 그해부터 농구 코트에 정장 바람이 불었다. 그 열풍은 배구 축구 탁구를 비롯한 전 체육계로 확산됐다.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베스트 드레서 감독은 국가대표 남자배구팀의 송만덕씨. 한양대 배구팀도 맡고 있는 송감독은 종로의 유명 양복점 전용 디자이너에게 25년째 옷을 맞추고 있다. 현재 150여벌의 정장이 방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을 정도. 발리 구두에 금장 로렉스 시계로 액센트를 준다. 화려한 와이셔츠에 커프스버튼은 기본.

또 깔끔한 멋을 내는 마사회 탁구팀의 이대섭 감독을 비롯해 명동의 P양복점 20년 단골손님인 테니스 LG칼텍스 최부길 감독 등도 멋쟁이로 소문나 있다.

이밖에 김호 삼성축구단 감독, 농구의 최인선(기아) 최부영(경희대) 김동광(SBS), 배구의 송만기(현대배구단 부장) 이순식(문일고), 민속씨름의 이준희(LG증권), 유도의 김재엽(마사회코치) 등이 스타일리스트 감독으로 통한다.<송영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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