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6)는 『그림은 화폭 위에 색채를 배치하는 것』이라며 실제 보이는 것을 자신의 색감으로 재해석해냈다. 그는 특히 당대의 사건이나 사회상에서 그림 주제를 선택했는데, 존재하는 상황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 방식은 늘 스캔들을 몰고 다녔다.1863년 아카데미 살롱전 낙선작가의 작품 만을 모은 「낙선전」에 내놓은 마네의 작품 「풀밭 위의 식사」는 폐쇄적인 파리 상류사회를 격론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어른 흉내를 내는 두명의 사내 사이에 조심성 없이 앉은 나체의 여성. 마네는 훤한 대낮에 벗고 있는 여성의 「뻔뻔스런 표정」을 빌어 밤에는 매춘부들에게 밀어를 속삭이면서도 낮에는 근엄과 도덕을 외치는 파리의 위선적 지식인들을 마음껏 비웃었다.
마네는 65년 살롱전에서 또다시 사건을 일으켰는데 이번에는 아예 매춘부를 전면에 내세웠다. 제목 「올랭피아」(1863년)는 여신 올림피아의 불어식 발음으로 당시 창녀들이 즐겨쓰던 가명이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상류층 여성을 고혹스러우면서도 상당히 선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반해 이 그림의 포즈를 본 딴 마네의 「올랭피아」는 창녀라는 선정적 대상을 매우 거칠고 건조하게 다루고 있다.
고객이 보낸 꽃다발을 들고 온 흑인 하녀, 발치에 있는 흑고양이는 모두 음침하고 도발적이다. 우악스런 손짓으로 마치 마지 못해 그러는 것처럼 치부를 가리고 있는 창녀의 표정에는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머리엔 붉은 꽃을 꽂고 팔에는 놋쇠 팔찌를 한 모습은 창녀의 비속한 취향을 드러내줄 뿐, 나체의 여성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에로티시즘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그림을 보고 격분한 것은 1860년 경부터 파리 중심가로 진출한 창녀들이 아니라 지식인 중심의 시민들이었다. 성적이며 반전통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야유와 항의는 물론 그림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일었다.
사회가 이렇게 분노한 것은 창녀가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창녀가 시민사회의 버젓한 일원이 됐음을 선포하는 것이었고, 매춘은 그것을 거래하는 남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마네는 결국 당시 사회의 만연한 매춘을 드러낸 셈이었다. 마네 그림 속에 나타난 것은 비속한 창녀였지만 그가 「재현」해낸 것은 성을 팔고 사면서도 「근엄주의」를 내세웠던 파리의 구역질나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세로 130㎝, 가로 160㎝로 파리 오르세이 미술관에 소장돼있다.<박은주 기자>박은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