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치적 징후로 보아 「레임덕」(대통령 임기말 권력누수현상)의 바람이 우리 정치권에도 슬슬 불어오고 있다. 레임덕현상은 현직대통령과 그를 뽑아준 국민들이 이별을 준비해야하는 기간이기도 하다.미국에서는 보통 현직 대통령 퇴임 1년전부터 레임덕현상이 시작된다고 보지만 중임이 금지된 우리의 경우 그 현상은 좀더 일찍 시동이 걸리는 것같다. 레임덕이 단순히 대통령의 통어력이나 권위의 순차적 상실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과 희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결과 정부 집행력의 효율성이 잠식되고 신뢰성이 크게 감소된다는데 있다.
집권기간의 치적과 레임덕은 반비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시말해 치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레임덕 기간은 짧고, 그 평가가 낮으면 낮을수록 그 시기는 길다는 것이다. 취임초의 기대와 집권말기의 평가에 대한 간격이 넓으면 넓을수록 레임덕은 더 빨리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국민들이 현직대통령을 빨리 보내고 싶으면 권력말기는 일찍 시작되기 마련이고, 국민들이 그와의 별리를 진실로 아쉬워한다면 레임덕은 그만큼 늦게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레임덕을 맞이해야 하는 현직대통령은 마치 가파른 언덕을 빠른 속도로 굴러내려 가야할 마차를 모는 마부에 비유할 수 있다. 이제 김영삼정부도 레임덕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닥쳐올 임기말 권력의 협곡을 이제까지와 같이 과연 임기응변과 무기력으로만 굴러내려 가게 할는지 자못 궁금해지는 시기와 형국을 맞고 있다.
대통령의 한몸에 쏟아졌던 각광과 열망이 서서히 재처럼 사그라지고 그를 에워쌌던 위광은 역사의 피안으로 스러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어느나라에서나 대통령을 했던 인물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위광을 잔광으로나마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도 잔임기간에 어떤 국정방향과 처신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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