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벌정책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과 시장독점을 막아 경제정의를 세우는 것이 한쪽 면이라면 반대쪽은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막고 창의성을 억제하는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 새로운 재벌정책이 나올 때마다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정부정책이 찬사보다 비난을 받기 십상인 것도 이같은 양면성 때문이다. 재벌정책은 그래서 대기업들도 수긍할 수 있는 분명한 논리와 명분이 있어야 하고 공정한 정책기조가 일관성있게 유지돼야 한다.정부의 재벌정책이 다시 시험대위에 올랐다. 대기업이 「사업부」라는 조직을 통해 신규사업에 변칙 진출하는 것을 규제하겠다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재계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그 향방이 주목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그룹이 사운을 걸다시피하며 추진해온 제철사업 허가여부가 15일 통산부의 공업발전심의회에서 최종 판가름난다. 통산부는 그러나 회의도 열리기전 정부가 불가방침을 정했다고 밝혀 이날 회의는 이를 공식화하는 요식행위가 될 전망이다. 현대가 포항제철 단일체제인 고로제철사업에 뛰어들면 공급과잉을 초래하게 되고 재벌에 의한 경제력집중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불허를 뒷받침하는 논리이다.
이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그러면 삼성은 왜?』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불과 2년전 정부는 4개사가 이미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승용차분야에 자유경쟁이라는 원칙론을 내세우며 삼성의 진출을 허가했다. 당시 정책결정자들이 처음에는 「공급과잉」을 들어 대부분 반대입장이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 형평성 문제만으로도 정부가 현대의 제철사업을 불허하려는 여러 타당성있는 주장들은 빛을 잃을 수 밖에 없다. 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한 정책들이 사안에 따라, 기업에 따라, 「술」에라도 취한 듯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경제규모가 커갈수록 그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는 우리 재벌들. 재벌정책이 필요한 당위성은 분명하지만 그럴수록 정책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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