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스산함 느껴지면 페치카와 음악이 있는 강 언저리 카페 찾아 물안개에 상심 달래고 차 한잔에 나를 녹인다비에 실려 가을이 저만치 갔다.
『떠나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만이 여행』이라는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에 동의한다면, 이 가을이 자취를 완전히 감추기 전에 그 끄트머리라도 잡고 서둘러 떠나는 게 어떨까.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 두물머리라는 고운 옛이름을 갖고 있는 곳. 우요일엔 양수리에 가자.
왜 비오는 날인가. 한인 듯, 설레임인 듯 북한강이 뿜어내는 물안개 때문이다. 김인숙이 단편 「양수리 가는 길」에서 그려 놓았듯 양수리 북한강의 물안개 풍경은 온 몸을 뒤흔든다. 상처받은 가슴 속으로 스며 들어 엷은 현기증으로 다가온다.
물안개만큼 좋은 것은 양수대교를 건너 왼쪽으로 돌자마자 만나는 서종길. 철길 건널목을 건너면서 시작되는데 긴 여운이 흐르는 강물과 함께 5㎞정도를 내내 달릴 수 있다. 길 양쪽에는 수양버들이 늘어서 있고, 차창을 조금 내리면 늦가을의 스산함을 잔뜩 실은 바람이 외투에 파고 든다.
차문을 열고 나가면 곧바로 물 위에 발을 내딛을 것으로 착각할 만큼 도로가 강물에 가깝다. TV광고에서처럼 물 위를 미끄러져 가는 자동차 안에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늦가을풍경에 마음이 아려오면 카페의 문을 살짝 열자. 라이브 무대가 있고, 곱게 달인 대추차가 있다. 시장기를 채워 줄 한끼도 깔끔하다.
팔당댐을 지나자마자 첫머리에 있는 카페는 「봉주르」. 양수리 카페의 원조다. 흙벽과 나무로 지은 초가집 2채에 오두막 1채. 밤이면 뜰에 모닥불이 타오르고 거기에 고구마와 감자를 구울 수도 있다. 유명세 탓에 늘 손님이 많다. (0343)576-7711.
서종길로 접어들어 서종면사무소를 지나 오른쪽 좁은 길로 들어서면 배따라기 멤버였던 황의채씨가 경영하는 「함박눈」이 있다. 문 연지 3개월. 소문이 무서워 주말이면 황씨와 후배 통기타 가수들의 무대가 비좁다. (0338)74-1398.
양수리에서 압구정동 카페 분위기를 느끼려면 함박눈을 지나 언덕으로 조금 올라가자. 「빌 & 제니」. 문 연지 한달이 채 안된다.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아 호젓하다. 라이브가 없는 대신 재즈가 있다. (0338)74-1188
「강가에」와 「토담」에 들어가 창가 쪽에 자리를 잡으면 강안에 앉은 듯한 느낌이다. 창 너머 피어 오르는 물안개가 손에 잡힐 듯하다. 양수리 카페 가운데 입지조건이 제일 나은 편. 바깥 풍경과 실내장식이 모두 빼어나 TV드라마 촬영장소로도 자주 이용된다. 두 곳 모두 하루 1시간가량 라이브 무대가 마련된다. 「강가에」 (0338)73-2742, 「토담」 (0338)71-0551.
도로옆 조금 높은 곳에 자리잡은 「산모롱이」는 화랑카페. 거의 연중무휴로 전람회가 열린다. 주인 남상만씨는 도예가. 남씨가 직접 구운 도기를 전시해 놓고 판매도 한다. 페치카의 훈기를 느낄 수도 있다. 창가에 앉아 북한강에 드리우는 산그림자를 바라보면 가슴 아픈 옛사랑의 추억에 젖어들 것이다. (0338)73-2556.
개그맨 최양락이 경영하는 「꽃피는 산골」은 건물 바깥과 안이 모두 고급스럽다. 전통적 분위기와 현대적 감각이 잘 어울려 있다. 젊은층보다는 나이가 조금 든 층에서 모임장소로 많이 찾는다. (0338)72-8896
양수리 카페이름으로는 다소 독특한 「사파리」는 송창식씨의 라이브무대(월∼토, 하오 8시30분)가 열리는 곳. 북한강쪽의 벽이 모두 큰 유리창으로 돼 있다. 노을이 살포시 앉은 북한강과 그 앞에 흐느끼듯 흔들리는 갈대가 좋다. 훈제연어, T-본 스테이크, 송이덮밥 등의 음식이 일류호텔급이다. (0346)592-2156
흙으로 건물 바깥을 멋스럽게 꾸민 「예뫼터」는 60평 남짓한 실내가 온통 강원도에서 실어 온 통나무로 꾸며져 있다. 문 연지 1년이 채 안됐는데 안심 스테이크, 쇠고기 버섯전골 등 음식 맛이 괜찮다는 소문이다. (0346)591-4334.
「데자뷰」는 플라워 디자이너 임채리씨가 마련한 공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 가을에 화사한 꽃이 반긴다. (0346)592-3698<양수리=최성욱 기자>양수리=최성욱>
◎양수리 가는 길/중부 경안 IC로 접어드는 샛길 이용을
양수리는 차를 몰고 가야 제격이다. 「두물머리」 양수리는 그자체가 푸른 강물을 끼고 도는 멋진 드라이브코스이기 때문이다.
양수리까지는 차편으로 1시간거리. 양수대교와 최근 놓여진 신청평대교, 두 다리를 넘나들며 강물 양켠에 펼쳐진 강변도로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도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새터가 있는 강 이편은 오래된 카페와 밀집한 러브호텔로 번잡스럽지만 띄엄 띄엄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한 강 저편에는 아직도 조용히 차를 대고 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남아 있다.
밤의 양수리도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평일 저녁늦게 출발해서 새벽 3시 정도 돌아올 작정을 하고 떠나면 흐를수록 깊어가는 강물 저편에 희미한 불빛들이 젖어드는 내밀한 풍경을 엿볼 수 있다.
평일에는 88도로가 끝나는 미사리에서 팔당대교를 넘어가는 길로 양수리로 가면 되지만, 차가 엄청나게 밀리는 주말이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한다.
주말 양수리행은 중부고속도로로 나서서 경안인터체인지로 접어들어 팔당호를 끼고 도는 샛길이 빠르다. 서울로 돌아올 때는 강 이편 길(45번국도) 송촌리 부근에서 산으로 접어들면 바로 덕소로 빠져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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