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록은 지배문화의 주류에서 밀려나 소외돼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록을 하는 것은 어딘지 부자연스럽다」고들 한다. 여성록은 장사가 안된다는 말도 한다. 박경서씨(26·「미스=미스터」보컬)는 『언더그라운드 여성록커는 많지만 상업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음반제작자들이 꺼려해 여성록이 확산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큰 소리로 자기를 표현하는 행위로서 록은 남성만의 전유물일까.9일 연세대 교정에서 열린 록콘서트 「여성과 록」은 여성이 직접 기획하고 여성록커들만이 무대에 올랐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여자친구와 함께 온 남성들을 제외하고는 3백여 관중들도 대부분 여고생에서 두 아들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여자 일색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 소속의 여성밴드들이 「교실이데아」를 부를 때까지도 『또 서태지야?』하고 시큰둥한 반응이던 관객들은 옐로우 키친의 도순주에 이어 황보령, 이상은, 미스=미스터 등 여성록커들이 내지르는 굉음이 교정을 뒤흔들기 시작하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회를 맡은 이상은은 『여러분, 여기 왜 와있는 줄 아세요? 자유롭지 못해서 그래요. 이 자리에서 여자도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웁시다』고 외쳤다.
「여성과 록」 콘서트는 연세대의 사회학강좌 「대중문화연구」수강생이 마련한 「96 백양로난장」공연의 하나다. 기획부터 출연자와 스폰서 섭외까지 4명의 여자학생이 도맡았다. 이윤진(27·대학원교육학) 현지영(25·대학원사회학) 김수연(23·불문과 4) 김지성(23·UC버클리대여성학과, 교환학생) 등.
「성 차이와 음악표현은 상관관계가 없다. 그런데 왜 록음악은 남성적인 이미지로 고착되는 것일까」에 주목한 이들은 여성이 주체가 되는 록콘서트를 꾸며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가부장제사회가 산출한 「연약한 꽃」 강수지류의 가요가 여성에게 알맞은 것이고 힘과 자기주장의 굉음이 진동하는 록음악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깨기 위한 것이었다.
『「록콘서트」아닌, 「여성과 록」이라는 이름자체가 성차별적』이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공연 후 반응들은 굉장히 긍정적. 김이수씨(43·영동여고 교사) 는 『처음으로 여성록 공연을 봤다. 굉장히 힘있고 즐거운 무대였다』고 했다. 두 아들과 함께 온 유은순씨(34·가정주부)는 『여자도 록을 할 수 있구나 깨달았다』고 말했다.
기획자 중 하나인 김지성씨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오빠부대」로 이미지 고착을 강요당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여성도 자기가 원하는것, 되고싶은 것을 크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공연은 대중문화에서 여성도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첫 시도이다』라고 평가했다.<이성희 기자>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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