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으로 막을 내린 미국선거는 낮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한편의 민주주의 드라마였다. 모든 과정이 공개적이고, 공정하게 진행되는 선거에 어떤 부정과 속임수도, 얄팍한 술수와 헛바람도 끼여들 수 없었다. 1년여 뒤면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하는 우리의 정치권은 미국민주주의의 위력과 진가가 어디서 나오고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지금부터라도 깊이 새겨 봤으면 한다.미 대통령 선거제도의 장점은 4년내내 선거운동을 허용하여 국민에게 후보를 심사하고 고를 수 있게 하는 점이다. 대통령에 뜻이 있는 인사들은 길게는 3∼4년, 짧게는 1∼2년전에 출마선언과 함께 각 분야에 걸친 정책비전과 집권철학을 제시한다. 이때부터 당내는 물론 언론과 각종 이익단체에 불려나가 혹독한 정책심사를 받는다. 중요한 것은 예비선거에서 후보지명까지의 모든 과정이 국민에게 철저히 공개되고 그동안 국민은 후보들의 도덕성 성실성 진실성과 지도력 식견 등을 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당들의 경우 대통령 후보결정과 결선과정은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전근대적 비민주적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문민시대라는 지금에 와서도 이 관행이 크게 달라진게 없다는 데 있다. 지금 대권논의에 대한 여야의 모습은 의아하리만큼 기이하다. 말로는 자유 경선을 내세우면서 「독불장군에게는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까지 하며 대권논의를 억제하고 있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물론 경제가 어렵고 안보가 흔들리는 상황에 대권타령만 하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라면 예상 후보들이 자유롭게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여 당원과 국민이 그의 능력을 알 수 있게끔 자유경쟁의 분위기는 보장되는 것이 옳다.
신한국당 고문회의에서 대권 논의자제와 관련, 13일부터 시작되는 지구당 개편대회에 예상후보들의 참석수와 발언내용을 논의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난센스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역시 자유경선을 제의하는 인사에게 총재 측근들이 해당 행위 운운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또 자민련이 대권후보 논의를 시기상조라고 견제하는 것 역시 공당다운 자세가 아니다.
정당이 선거에 임박해 밀실에서 후보를 급조하여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 시대는 지났다. 대권논의를 억제하다가 불쑥 인물을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경계와 주목의 대상이다. 여야는 1인체제의 통제적 당운영 방식을 탈피, 모든 예상후보들에게 정책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게 하여 지금부터 자유경선의 분위기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듯 후보가 나타나는 데서 오는 충격과 혼란을 줄일 수 있다.
국민은 이미 50∼80년대의 국민이 아니다. 또 92년 대선때 수준의 국민도 아니다. 국민이 후보를 직접 검증·심사하고 최종선택하는 민주주의 드라마―미 선거를 주의깊게 보고 있는 것이다. 후보들의 자유로운 정견 개진과 국민의 심사―후보확정은 올바른 선택의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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