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내 일각에서 유류와 전기 가스값을 대폭 인상하고 아울러 고속도로 통행료도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지금 같은 시기에 위험천만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찬바람이 불면서 가까스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물가에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주면서 수그러드는 인플레 심리에 불길을 댕겨놓을 위험성이 있다.전세파동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온갖 무리를 다해가며 겨우 연말 억제선 4.5%이내로 물가를 수습해가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앞장서서 파급 영향이 민감한 에너지 가격을 일거에 대폭 인상한다는 것은 어떤 설명으로도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과격하고 무리한 정책이다.
우리는 정부내에 에너지 고가정책의 신념을 가진 일부 고위 당국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에너지 소비실태는 너무 낭비가 심하고 세계 제1의 소비증가율을 기록하면서도 국민적 자성이 없어 어떤 충격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고가정책이라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에너지낭비가 과소비의 핵심이고 과소비가 당면 경제현안의 핵심이므로 에너지 절약을 위해 충격적인 고가정책을 쓰는 것도 당장 서둘러야할 과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는 것으로 알려진 에너지 가격인상 방침은 두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첫째 정부가 의도하는대로 가격으로 절약효과를 내자면 그 인상폭은 보다 충격적이어야 한다. 일단 10∼20% 올리고 내년들어 사정을 봐가며 다시 그 정도를 올리는 식으로 단계적인 시차인상을 해서는 충격에 의한 절약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높은 휘발유값에 견디는 적응력만 길러주게 될 것이다.
둘째는 정책의 우선순위에 관한 문제다. 에너지 절약이 시급한 과제이나 전반적인 물가안정은 더 절박한 과제일 수 있다. 특히 올해 어려운 고비를 겨우 넘기고 내년들어서도 악재가 산적한 물가환경을 감안할 때, 또 경기상황이나 대선정국 등 경제외적인 요소를 고려할 때 지금 그 같은 충격요법을 써도 괜찮을 것인지 당국자들이 확신을 갖고 판단해주기 바란다.
외채가 1,000억달러에 육박하고 경상적자가 한해 200억달러를 기록하는 마당에 휘발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기름을 물쓰듯하고 거기다가 달러를 펑펑 무제한으로 쏟아붓고 있는 것이 한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목표에 너무 집착해서 다른목표들을 희생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우리 경제 전반의 상황과 여건을 잘 판단해서 보다 신중한 방법으로 에너지 절약 목표에 접근해 가는 정책을 찾아보기 바란다.
가격인상에 앞서 먼저 권하고 싶은 것은 정부와 관련단체들이 앞장서서 대대적인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벌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형편을 봐가며 에너지값을 인상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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