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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음악은 없고 수다만 있다

입력
1996.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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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과 클래식이 흐르던 FM. 그러나 지금, 그 아름다운 선율은 사라지고 DJ와 게스트가 쏟아내는 잡담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청취율이 낮은 록이나 재즈 프로는 더이상 설 땅이 없는 ‘FM수다시대’ 그 아름답던 선율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More Talk, Less Music.

「말」이 많다. 음악은 없다. FM에 아름다운 선율이 사라졌다. DJ와 게스트, 청취자들의 수다가 빼앗아 가버렸다.

학창 시절 뛰는 가슴으로 FM을 녹음해 가며 팝송과 클래식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FM세대들이 FM을 멀리 하고 있다. 차분한 선율에 하루의 고단함을 씻고픈 중장년층도 TV에 이어 FM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밤의 FM 채널에는 10대의 우상인 DJ와 스타 게스트들의 수다 떨기, 요란한 리듬이 있을 뿐이다.

KBS 2FM 「서세원의 가요산책」,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 MBC FM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 박소현의 「FM데이트」, SBS로 옮겨가는 최화정이 진행했던 「가요광장」, 대표적으로 말이 많은 프로그램들이다.

절반 이상의 시간을 잡담과 청취자들과의 통화로 채우는 프로그램들이 어느새 인기채널의 전형이 돼버렸다. KBS가 자랑하는 「서세원…」은 120분 방송 중 음악은 겨우 10곡 남짓. 이쯤되면 「가요 산책」이 아니라 「수다광장」이다.

FM이 「수다시대」로 돌아선 직접적인 계기는 AM방송을 FM으로 내보내는 표준 FM이 등장하면서부터다. FM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청취자들의 FM채널이 이 곳으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FM은 경쟁사와는 물론 AM프로그램과 청취율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노래 잘 고르는 DJ보다는 말 잘하는 DJ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손수운전자들이 늘어나며 라디오 청취자를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똑같은 시간대에 상대방 DJ에 맞설 수 있는 DJ로 대응 편성하는 것이 일반화했다.

청취율 높이기라는 지상 최대의 명제 앞에서 FM PD들이 신봉하는 대원칙은 「음악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와 스타DJ, 인기 가요로 승부한다」는 것이다. KBS가 「오늘은 웬지…」의 서세원으로 MBC 간판프로인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를 제치자 방송가에 이같은 신념은 더욱 굳어졌다.

방송국들은 프로그램 개편 때마다 상대방이 어떤 DJ를 앉히는 지가 최대 관심사다. 어떤 성격의 프로그램을 만드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6개월마다 한 번 씩하는 청취율 조사가 가까워오면 어느 프로그램 할 것 없이 인기 게스트들을 집중 투입한다. 가장 확실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한 FM라디오 PD의 말이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레시브 록, 재즈 등 애호가들을 위한 프로를 해보고 싶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다. 청취율이 당장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때때로 그런 모험이 시도됐다. 그러나 수개월 만에 막을 내리는 쓴 맛을 본 뒤 이제는 아예 엄두 조차 내지 않는 실정이 됐다.

14일 개국하는 SBS FM라디오 준비팀장인 이진규 부장. 그는 『DJ의 멘트 뒤로 배경 음악이 흐르는 방법을 써서라도 24시간 내내 음악이 끊기지 않는 방송을 만들겠다』며 FM살리기 의욕에 차있다. 그러나 KBS, MBC 양대 방송국과의 청취율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SBS가 「음악FM」이란 원칙을 얼마나 끌고 갈 수 있을 지는 두고볼 일이다.

스테레오 음질이 가능한 FM이 음악에 치중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미국의 경우 한 도시에만도 수십개의 FM방송국들이 「More Music, Less Talk」이라는 기치 아래 특화한 음악 장르를 집중 방송하고 있다.

외국처럼 사설 FM방송국을 손쉽게 세울 수 있게 된다면 우리에게 수준 높은 FM의 등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청취자들의 다양한 취향에 맞춘 음악프로그램으로 충분히 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 대치상황을 이유로 라디오 전파관리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당장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방송 관계자들은 『AM라디오나 TV방송을 FM으로 내보내는 표준 FM은 전파낭비』라고 말한다. 이들 주파수라도 활용해 FM 방송 소프트웨어들을 다양하게 공급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음악 산업의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FM라디오. 음악 애호가들은 『음악이여, 영원히』라고 외치고 싶다.<이윤정 기자>

◎인기DJ 서세원씨의 변/“FM=음악은 고정관념일 뿐”/말 많은 것보다 말같지않은 말 많은게 문제

말 많은 DJ 서세원은 「FM에 음악이 없다」는 데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KBS 2FM 「서세원의 가요산책」(하오 2시)에서 「오늘은 웬지…」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는 『FM이 음악만 틀어야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고정 관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60년대 초반 FM이 처음 전파를 탔을 때 다수가 보유하고 있는 AM 채널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나눈 구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8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 FM이 라디오의 대명사가 되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이분법은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즉, FM은 좋은 음악을 제공해야 할 뿐 아니라 정보와 오락의 기능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서세원은 『말이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말같지 않은 말이 많은 게 문제』라고 항변한다. 말도 재미만 있으면 음악처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진행하는 「가요산책」은 말과 음악의 비율이 50대 50 정도. 팝 프로그램 시간대로 인식되었던 이전까지의 2시대 프로그램에 비하면 말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오늘은 웬지…」를 비롯해 연예인 인터뷰, 청취자 사연 소개 등 고정 코너 외에 서세원 특유의 입담이 수다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음악이 없다는 청취자들의 불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참가신청 전화가 하루에 100통 이상씩 걸려온다.

말많은 서세원이 거부감을 주지 않는 이유는 나이를 불문하고 듣는 이를 웃음짓게 만드는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때로 과장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중년의 택시 기사에서부터 중고생에 이르기까지 그의 입담 앞에선 웃음을 터뜨린다. 대본에 의존하지 않고 즉석에서 상황에 맞게 진행하는 「애드 립」도 서세원의 매력이다.

서세원과 함께 「가요산책」을 만들고 있는 김홍소 PD는 방송국의 인식 변화와 청취자의 주체적 선택을 강조한다.

『현재의 FM은 청취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모방한다. 들을 게 없다는 청취자들의 불만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외국의 경우처럼 FM에 음악전문과 토크전문 등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차별화해 청취자들이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주장이다.<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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