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이었다. 어느날 미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한국에 온 후 여름휴가 때만 부모님을 뵐 수 있어 한 달에 두세번은 국제전화를 하고 있다. 그날 어머니는 놀라운 소식을 하나 전해주었다. 아버지의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2∼3년안에 일을 더이상 못하시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당시 치과의사이신 아버지는 6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병원일을 보아왔다. 치과의사에게 시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바로 은퇴를 의미했다.
나는 장남이다. 내가 만약 한국인이라면 아버지가 은퇴하자마자 내 집으로 모시고 여생을 돌봐야 하는게 도리다. 한국인들은 그런 관습으로 가족유대를 돈독히 하고 부모나 조부모에게 효도를 한다. 이 경우 대개 장남이 거의 모든 책임을 지고 성실하게 부양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미국인의 경우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부산 국제법률사무소에서 받는 내 급료로 부모님을 부양할 수 있지만 미국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함께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동생 5명도 부모부양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동생 두 명은 회계사이고 다른 한 명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부모부양에 관한 한 미국에서 의미가 없다.
미국 사람들은 부모나 조부모가 홀로 되어도 당신들의 자립이 완전히 불가능해지는 최후까지 모시지 않는다. 노인들도 어떻게 하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하지 자식들에게 기댄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인 92세까지 보험회사 세일즈맨으로 일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96세까지 혼자 사시다가 92년에 돌아가셨다. 물론 가족들이 매일 방문하고 금전적 지원을 했다.
한국에서 살면서 노년의 부모를 모시는 한국적 관습이 자꾸 옳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은 내가 그런 것을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하신다.
아버지는 이제 눈이 거의 안보여 은퇴하셨다. 금년에 두 달 정도 우리랑 한국에서 사셨지만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와 두 분이 살고 계신다. 아버지는 자신의 은퇴를 대비해 조그만 사업체를 하나 만드셨다. 금전적으로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자식들과 함께 살고싶은 마음은 있겠지만 미국적 전통 때문에 그런 마음을 입밖에도 낼 수 없다.
한국에 사는 미국가정의 장남으로서 내가 어떻게 하면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자체가 한국문화의 선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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