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응징하는 폭력은 정당하다?/정의의 이름으로 포장해도 폭력의 본질은 결국 폭력MBC특별기획 「화려한 휴가」(극본 한태훈, 연출 이승렬)는 무더기 살인으로 시작했다. 불사조 강주훈(최재성)은 거침없이 사람들을 죽여 나갔다. 가는 철사줄로 목을 조르고, 칼로 등을 찌르고, 태연히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죄의식이 전혀 없다. 부당하게 저질러진 제도적 폭력에 대한 복수이자 악에 대한 응징이기 때문이다. 80년 5월 무자비한 성고문으로 여동생과 애인의 인생이 망가졌다. 법은 멀고, 여전히 관대해 아직도 그 때의 상처를 씻어주지 못하고 가해자는 더욱 권력과 호사를 누린다.
「화려한 휴가」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다. 누구도 주훈과 그의 무자비한 폭력을 선뜻 욕하지는 못한다. 아니 그렇게라도 해서 정의가 실현되고 역사가 바로 섰으면 하는 마음까지 읽고 있을 것이다.
이성보다 감정에 의존하면서 드라마도, 시청자도 모르는 사이에 「드라마의 폭력성」에 관대해진다. 지난해 벽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모래시계」때도 그랬다. 오히려 당당했다. 『부당한 폭력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했을 뿐』이라고.
그것으로 면죄부가 될까. 부당한 제도적 폭력 못지 않게 정의란 이름 아래 개인이 함부로 휘두르는 폭력도 위험하다. 드라마라고 예외일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용인된다면 자극적인 폭력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역사나 현실을 억지로 끌어들이기만 하면 된다.
「화려한 휴가」부터 그런지 모른다. 80년의 비극은 주인공 강주훈의 폭력에 연민을 갖게 만드는 장치이다. 그 뿐이다. 그 다음부터는 그럴듯한 가공의 세계로 뛰어든다. 강주훈은 미국의 최대 마피아 대부 안토니오가 보호해 주고, 안토니오는 CIA국장과 거래를 한다. 무기수출과 관련, 미국 정치인들이 받은 뇌물의 진상을 밝힌 자료가 강주훈의 손에 있다.
드라마의 무대도 넓어졌다. 서울과 뉴욕, LA에서 거물들이 긴박하게 움직인다. 무대가 넓어진 만큼 한·미관계를 짚어보고, 정치인들의 속성을 꼬집기도 한다. 그러나 날카롭거나 치밀하다는 느낌은 없다. 등장인물만 한국인인 존 그리샴의 소설을 읽거나, 할리우드 어설픈 액션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이대현 기자>이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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