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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김세원의 ‘경주 남산시·판화전’(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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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김세원의 ‘경주 남산시·판화전’(시평)

입력
1996.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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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끝무렵, 경주에서는 시인 정일근이 화가 김세원과 함께 「경주 남산 시·판화전」을 열었다. 경주 남산은 이름모를 불적들이 들풀처럼 가득 번져있는 산이다. 그 불적들만큼 온갖 전설이 그 산에 둥지를 틀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곳에서 모임을 가지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했다는 산, 박혁거세가 그 기슭에서 났고 헌강왕 때는 산신이 현신하여 나라 멸망을 경고했다는 산이 바로 남산이다.영화와 패망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아니 탄생에서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내력이 중중첩첩으로 포개져 있는 이 산을 두고 시인이 노래를 왜 지었겠는가? 내력이란 단순한 역사적 사실들의 진행이기 이전에 마음의 집단적 발화이고 굽이치는 소망의 강줄기인 것. 시인은 남산의 불적들이 저마다 머금고 있듯, 정토에 대한 희원을 오늘의 살벌한 박토 위에 싹틔우고 싶었으리라. 그 소망을 그대로 누천년 잇게 하고 싶었으리라. 한조각 사랑의 노래로, 「어둔 밤길 걸어 남산 돌부처 찾아오는 눈먼 그믐달을 위해/기름진 살을 태워 불 밝히고 싶어」졌으리라.

허나,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겨우 한 줄의 시로 세상의 등불이 되는게 있을 법한 일이긴 한가? 시의 교과서에 그런 말이 적혀 있는 건 분명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경주 남산 돌 속에 누워 속 편한 그대는/사랑이면 겁인들 견딜 수 있다고 속삭여주」지만, 나는 「아이구 겁을 기다릴 수 있」는가? 그러나 보라. 저 불적들이 어떻게 소망을 전하는가를. 풍상에 닳고 닳아 뭉개진 돌부처의 얼굴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 자신 폐허이며 쇠락의 모습으로 끈끈한 생의 지속을 증거하고 있지 아니한가?

부활은 언제나 폐허의 틈새로 부는 바람에 실려오는 것이며, 생명은 언제나 귀신들의 보살핌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시인이란 무릇 귀신들과 내통하는 자이니, 시인이 경주 남산을 찾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박씨 성을 가진 그 사내가 남긴 잇자국처럼/서기 927년에 남은 선명한 슬픔이 영화처럼 펼쳐」지는 마음 자락에 시인은 그 높은 순도의 슬픔들을 실삼아 사랑의 무늬를 한뜸한뜸 수놓는 것이다. 「우리 한지에 쪽물을 들인 감지는 천년을 견딘다는데/그 종이 위에 금니은니로 우리 사랑의 시를 적어」보내면, 바로 그것이 천년 기억의 강에 물 한방울 보태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시인은 훗날 읽히기 위해 시를 쓰는게 아니다. 다만 그는 시를 쓸 뿐이니, 냉혹한 이기의 거리에 흩날리는 시쓰기의 절망과 잔해들이 저들 스스로 한데 모여 결코 못잊을 소망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정과리 문학평론가·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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