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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전화·팩스도 가로챈다/산업스파이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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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전화·팩스도 가로챈다/산업스파이가 몰려온다

입력
1996.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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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장비 어디까지/선글라스·넥타이핀 부착 특수카메라/손가락 한마디 크기 소형도청장치/15m밖 소리감지 볼펜형 감청기007 제임스 본드가 사용하는 특수 첩보장비는 더이상 영화속의 허구가 아니다. 정보전에 뛰어든 산업스파이들은 모든 첨단장비를 동원한다. 옆사람에도 눈치채이지 않고 생산라인을 촬영할 수 있는 특수카메라, 상대방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도청·감시장치는 물론, 무선전화나 팩스 전송파일을 가로챌 수 있는 인터셉터 장비까지 등장했다.

공장견학 방문객의 선글라스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움직이는 순간 공장 생산라인은 소리없이 선글라스에 부착된 소형카메라 속에 담긴다. 시선을 옮기며 선글라스와 연결된 주머니속 셔터만 누르면 감쪽같이 일을 끝낼 수 있다.

넥타이핀을 자주 만지거나 금연구역에서 라이터를 꺼내드는 방문객도 의심해보아야 한다. 넥타이핀 라이터 시계 반지 등에 내장된 초소형 특수카메라가 모든 산업기밀을 빼내갈 수 있다.

사무실 책상과 전화기 바닥도 산업스파이가 노리는 취약부분이다.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소형 도청장치를 설치하면 사무실안의 모든 대화와 전화내용을 엿들을 수 있다. 심지어 컴퓨터칩으로 위장된 초소형 도청기도 있다. 야외나 복도라고 안심할 수 없다. 안테나형 고성능 감청기는 둘간의 대화내용을 수십m 떨어진 곳에서도 선명하게 감청할 수 있다. 볼펜이나 우산형 미니감청기는 의심받지 않고 15m 밖에서 속삭이는 소리까지 은밀히 감지해 낸다.

산업스파이는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 감시용 특수비디오카메라를 사용하기도 한다. 천정에 몰래 부착해둔 화재경보기형 감시카메라가 실내의 모든 정황을 비디오로 담아 외부로 전송한다. 장식용 동물조각에 내장된 카메라와 전기콘센트형 카메라도 감쪽같다.

전자기술의 발전과 함께 최근에는 무선전화 팩스 컴퓨터파일 전송시 순간적으로 이를 가로채는 인터셉터 기기들도 등장하고 있다. 팩스 인터셉터는 전화선이나 팩스 수신기에 연결해 전송되는 팩스문서의 내용, 시간, 양쪽사용자의 팩스번호 등을 모두 알아낼 수 있다. 무선전화 인터셉터는 1백m이내에서 발신하는 핸드폰의 번호와 발신내용까지 감지, 추적할 수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사내 근거리 통신망(LAN)을 통해 전송되는 문서를 회사건물 100m내에서 순간적으로 탐지해 가로채는 전송파일 인터셉터까지 등장해 보안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배성규 기자>

◎사이버 스파이/컴퓨터·인터넷망만 있으면 어디든 내 안방

「사이버 스파이」. 최근 사이버 공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컴퓨터 산업스파이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에게 고도의 스파이 기법이나 첨단 장비는 불필요하다. 사이버 스파이의 유일한 무기는 컴퓨터와 인터넷망. 이들은 회사 컴퓨터시스템에 침입, 대량의 산업정보를 소리없이 빼내 간다.

85년 서독의 「데이터 여행자」사건이 사이버 산업스파이의 첫 예다. 마르쿠스 헤스 등 해커 5명이 유럽우주기구(ESA), 미 항공우주국(NASA)과 버지니아주 군수산업체, 일본 쓰쿠바연구소 등에서 4년여간 산업과학정보를 빼내 구소련 KGB에 팔아 넘겼다.

각 산업체가 산업스파이를 막기 위해 실시하는 출입통제, 서류보안, 직원관리 등도 사이버 스파이들에겐 무용지물이다. 대개 해커나 컴퓨터공학도 출신인 사이버 스파이들은 인터넷이나 통신망을 통해 경쟁업체들의 컴퓨터시스템에 숨어 들어간다. 보안프로그램은 몇시간이면 뚫리기 마련이어서 이들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런 장애나 위험없이 시스템을 검색, 경영전략 신상품정보 신기술 등 기밀을 대량으로 복사해 간다.

이들이 보통의 해커와 다른 점은 파괴나 유희보다는 산업정보를 흔적없이 빼내 소속사나 의뢰사에 넘긴다는 것이다. 이들은 고전적 기법보다 훨씬 빠르게 방대한 양의 치명적인 산업정보를 빼낸다.

추적시스템을 통해 흔적을 발견, 추적하지만 이들의 존재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에는 상대회사 간부직원의 패스워드를 해독해 침입하는 방법을 쓴다. 이 경우 외부침입 흔적이 남지 않아 정보유출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국내에도 해커나 컴퓨터전문가를 회사 정보팀에 영입, 산업정보수집과 보안에 활용하는 예가 늘어나고 있다. 93년 청와대 ID 도용사건의 장본인 K씨는 94년 국내 D그룹 정보팀에 스카웃됐던 인물이다.

기업들마다 컴퓨터시스템에 「방화벽(Firewall)」 등 보안시스템을 강화하고 패스워드 체제를 개선하고 있지만 완전방비는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스파이야말로 앞으로 가장 「각광받는」 산업스파이일 것으로 점치고 있다.

◎국내기업간 스파이전/77년 D조선소 설계도 유출 효시/‘죽기 아니면 살기’ 갈수록 고도화

「경쟁사의 신기술 정보를 확보하라」

외국기업들의 산업스파이 공세에 못지 않게 국내기업간 스파이 전쟁도 치열하다. 부당 스카우트와 직원 매수, 무단 침입과 문서 절취, 위장 취업, 기관원 사칭, 미인계, 업무방해 등 다양한 수법이 동원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내기업간 산업스파이전의 효시는 77년 부산 D조선소 설계도 유출사건. D조선 기술자 R씨가 해저석유시추선 설계도를 빼내려다 발각됐다. 조사결과 D조선에서 간부로 일하다 신생 K조선소 의장부장으로 옮긴 Q씨가 R씨에게 스카우트 조건으로 설계도 반출을 요구했던 것. Q씨는 R씨외에도 직원 3명을 스카우트하며 생산계획서 등 중요정보를 8건이나 훔쳐냈다. K조선은 그동안 빼돌린 중요문서를 모두 D사에 반환했지만 이는 이미 활용돼 버린 종이뭉치에 불과했고 D사는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

이같은 부당스카우트는 가장 전형적인 산업스파이 수법으로 인력스카우트 전문용역회사까지 성업중이다. 경쟁사 직원이 비어있는 사무실에서 중요서류를 훔쳐가는 예도 있다. 95년 L그룹은 연구개발(R&D)투자와 관련한 1급 기술개발 계획서를 점심시간에 분실했다. 며칠후 L그룹 기획조정실장 K씨는 분실한 서류의 사본을 경쟁사인 A사 기획전무실에서 발견, 항의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오히려 『서류관리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소리냐』 고 무안까지 당했다.

신기술을 빼내기 위한 위장취업도 흔하다. 스테인드 글라스 생산회사인 H사는 92년 같은 상품을 덤핑하는 C사에 거래처를 빼앗겨 큰 타격을 받았다. 조사 결과 C사 사장은 6개월전 H사에 취업, 기술을 습득하고 자료를 빼낸 뒤 퇴사한 M씨로 밝혀졌다. 정부기관원을 사칭해 경쟁업체의 기술정보를 빼내는 수법도 동원된다. 94년 충남 아산 N사는 기관원을 사칭한 경쟁사 K사의 직원 3명에 신제품 연구자료를 건네주고 생산라인을 견학시키며 브리핑까지했다.

미인계는 경제첩보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P종합상사 임원 K씨는 유창한 외국어와 빼어난 미모의 S마담에 반해 E요정의 단골손님이 된다. 90년 여름밤 신사업에 대한 신용장 발송상담이 성사돼 바이어와 함께 E요정을 찾은 K씨는 S마담도 함께 한 자리에서 상품종류와 가격, 확장계획 등 핵심사업 내용을 언급했다. 한달후 K씨가 바이어로부터 신용장 발부 취소통보를 받았을 때 사업은 경쟁사인 Y종합상사에 넘어가 있었다.

이밖에도 화물회사를 통해 발송한 문서박스가 운송과정에서 감쪽같이 바꿔치기 되는가 하면 경쟁사의 계측기기를 입찰자격 심사에서 떨어 뜨리기 위해 관계자를 매수, 잘못된 결과가 나오도록 부정행위를 하는 사례도 있다.

「상대방의 정보를 빼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내기업간 스파이전도 그 정도와 첩보수단이 고도화하고 있는 것이다.<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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