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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종언과 문학의 종언(신문학사 탐구:23·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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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종언과 문학의 종언(신문학사 탐구:23·끝)

입력
1996.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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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와 60년대 문학의식/삶의 광장서 부대낀 ‘풍문속 자유’/최인훈­현실법칙에 난파된 의식의 비극 그려/김수영­‘자유타령’ 허구성 모더니즘 선상서 극복/신동엽·김지하­방향전환… 민중·민족해방의 새 지평 열어/창비파­“지식인의 임무는 자유를 위한 싸움”… 전투적 출발/문지파­자유의 기반없음에 좌절… 언어와 환상으로 치달아/자유의 실현은 곧 역사의 종언/문학에도 ‘말기적 인간’ 출현할지도객:4·19란 무엇인가. 60년대이다. 60년대란 무엇인가. 60년대 의식이다. 60년대 의식이란 무엇인가. 자유의 전개과정에 대한 의식이다. 그것은 곧….

주:문학이 앞장선 그런 의식이었다….

객:선생이 늘 힘주어 말하는 그 헤겔주의겠군요. 60년대 문학의식의 위대성은, 역사의식의 역사(발전)라는 전제 위에 선 것이니까. 고쳐 말해 문학의 역사와 의식의 역사가 나란히 간다는 대전제 위에 서 있지 않습니까. 이른바 의식적 주체개념으로 세계를 작품화하기.

주:전후세대를 등장시킨 것이 6·25가 가져온 최대의 근거였지 않았을까. 「화전민 의식」이라고 그들은 스스로를 규정했던 것. 진공상태, 무에서 출발하여 땅을 개간한다 함은 곧 제작정신(표상화 작용)의 천명이 아닐 수 없지요.

객:그렇다면 「무」에서 출발한다는 전후세대의 명제는 한갓 비유에 지나지 않겠지요. 기성세대를 전면부정한다는 것이기보다는 세계성(보편성)의 전면수용을 가리킴이 아니었을까. 제2의 신문학 출범, 그러니까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 육당)의 그 장면이라고나 할까. 백치의 소년이 세계 앞에 선 형국. 전후세대의 등장으로 비로소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과의 동시성 확보에 턱걸이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주:문학의 역사가 의식의 역사와 나란히 간다면 세계문학과의 동시성 확보를 향한 걸음걸이란 동시에 세계사의 보편성에 동참한다는 것일 수 밖에. 아무리 뒤졌다 해도 시민혁명의 의의에서 시작할 수 밖에.

객:4·19의 혁명적 성격이 다음처럼 규정되기도 하더군요. 「그것은 일견 시민혁명의 의의를 가짐과 동시에 우리 근대사의 특수성에 매개되어 또한 민족해방운동, 민중해방운동의 의의도 갖는 것이라고 성격지울 수 있다」(김태영, 「민족·민주의식의 발전계기, 1985)

주:4·19 이후의 우리 사회의 진행방향은 (1)시민혁명 (2)민족해방운동 (3)민중해방운동으로 규정되는 것. 문학이 이에 엄밀히 대응된다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지요. 범박히 말해 현실을 그리는 것이 문학이니까.

객:이제는 조금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어째서 지금도 우리문학이 4·19 또는 60년대의 연장에 있을 따름이라는 선생의 지론을. 외세에 대한 억압이 있는 한 (2)민족해방운동도 그 진행과정 속에 있으며, 민중억압의 구석이 남아있다면 아직도 (3)민중해방운동의 과정 속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민족통일을 아직도 남겨두고 있는 한 (1)시민혁명의 미완결 단계라 하겠군요. 문학적 전개양상을 점검하는 자리에 와 있으니까.

서구적 개념으로서의 시민혁명으로 4·19를 규정할 경우 그것은 추상적으로 말해 「자유」라는 이 한 마디에 집약시킬 수 없을까. 국민국가의 건설, 자본제 생산양식의 완성이라는 기본틀 위에서 비로소 시민계급의 자유가 성립되는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 이것들의 결여 또는 미숙으로 말미암아 그 열매인 「자유」만 달랑 부상해 올랐던 것 아닙니까. 이호철의 「소시민」(1965)이 중요한 것은 이 점에서 설명될 수 없을까. 소시민이라 해도 막상 따져보면 「서민」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시민이란 하층민에 불과하다는 사실의 확인은 그러니까 작가의 민감함에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최인훈의 「광장」(1960)도 이 범주에서 설명될 수 없겠습니까.

주:「광장」의 발표 당시의 작가 서문이 그 점을 잘 말해주고 있지요.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구정권 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낀다」라고 작가가 말했을 때 주목되는 것은 풍문으로서의 자유(추상적·관념적 자유)와 현실적 자유(삶 속에 실현된 자유)의 대비에 있지 않겠습니까. 운명을 만나는 장소를 두고 광장이라 했다면, 추상적 광장이 아니라 주인공 이명준을 통한 구체적인 광장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광장」의 의도이지요.

객:그 의도는 사실상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이명준은 남쪽도 북쪽도 거부하고 제3국으로 도망치는 그런 형국이었지요. 결국 그는 제3국행도 포기하고 자살해 버리지 않습니까. 대체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기야 남과 북을 등거리에서 바라본 것은 대단한 진전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 등거리가 이명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주:죽음이긴 하나 「자살」 아닙니까. 자살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의식의 과잉상태인 까닭. 자살은 일종의 난파가 아닐 수 없는 것. 현실적으로 자유를키울 수 있는 기반이 결여되어 있었던만큼 작가도 주인공도 이 현실법칙에 따를 수 밖에 없지 않았던가.

객:풍문으로만 듣던 시민적 자유를 상상 속에서 실현하다가 난파해 버렸지만 그런 시도 자체만 하더라도 처음있는 문학사적 사건이었다?

주:또 있지요. 시민혁명의 범주에서라면 이명준과 같은 서구지향적 지식인의 역사의식을 가리킴이겠고, 그런 사례의 하나로 「시여 침을 뱉어라!」라고 외친 김수영을 들 수 없을까. 4·19 이전의 모든 시를 거부한 것이니까.

객:「푸른 하늘을 제압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푸른 하늘을」, 1960)라고 김수영은 읊었는데, 4.19 이후의 모든 시는 좀더 고독해야 하고 한층 강인해야 한다는 결의의 표명이겠군요. 피의 대가 없는 어떤 자유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런 자유타령만 하고 있을 수만도 없지 않습니까. 실상 모더니즘 밭에서 자란 지식인의 문학이란, 시민사회의 기반이 결여된 토양에서라면 기껏해야 지식인의 의식과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주:이명준의 난파에 대응되는 것이 김수영의 풍자(지적인 기법)였지요. 모더니즘의 토양에서 자란 김수영의 한계라고나 할까. 시인 스스로 「누이야/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누이야 장하고나!」, 1961)라고 자기한계를 규정한 바 있습니다.

객:아, 이제 알겠다. 4·19를 서구적 의미의 시민혁명으로 바라보는 한 그 가능성과 한계가 동시에 분명해졌다는 것. 그러니까 시민혁명에서 민족해방, 민중운동으로의 방향전환이랄까 의식의 발전이 불가피하다는 것.

주:「사월도 알맹이는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라고 「금강」의 시인 신동엽이 외쳤을 때, 그것은 동학년 곰나루의 혁명과 연결된 민족해방운동과 민중운동의 장대한 서사적인 역사의식의 지평을 열었다고 볼 것입니다. 5월의 광주도 이 연장선상에서 설명될 수 있지요. 한편 「풍자 아니면 해탈이다」에서 「해탈」을 열어보인 것이 「오적」(1970)의 시인 김지하. 모더니즘을 흡수한 바탕 위에서 한국민중의 풍요한 언어창고를 송두리째 열어 자기 것으로 소화한 것이기에, 그를 두고 민중, 민족시인이라 비로소 부를 수 있겠지요.

객:세칭 창비파라든가 문지파라는 것도, 선생의 도식에 따른다면 4·19혁명의 구도 속에서 설명될 수 밖에 없겠는데.

주:근대시민혁명으로 4·19를 본 것이 이른바 「창작과비평」의 출발점이지요. 그 창간호(1966)를 보십시오. 사르트르의 평론 「현대의 상황과 지성」(「현대」 창간사)이 번역되어 실려 있지 않습니까. 지식인 문학지임을 선언한 것. 창간사(「창작과 비평」)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도 먼저 작가는 언론의 자유를 위한 싸움이 자기 싸움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이 경우 「자유」란 18세기 프랑스시민계급의 자유개념이 아니었을까.

객:김승옥, 이호철의 소설이 창간호에 실려 있지 않습니까. 시는 단 한 편도 없고. 그 점에서는 사르트르를 닮았군요. 문지파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주:「문학과 지성」(1970)은 70년대의 출발점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실상 그 뿌리는 깊지요. 무엇보다 김현, 김승옥 중심의 동인지 「산문시대」(1962)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또한 「68문학」을 거치면서 이청준이 가담하지 않았던가. 김현에 있어 문제는 순수의식에 있었지요. 꽃이여, 하고 내가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존재한다는 말라르메의 허무극복방식이 그의 출발점인 까닭. 4·19가 그들로 하여금 자유와 그 좌절(허무의 늪)을 보게 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현은 언어의식에 매달렸고, 김승옥은 환상적 기준에 매달렸던 것. 자유를 지탱할 기반이 없었으니까. 그들은 실패하게 되어 있었지요. 「환상수첩」(김승옥)의 주인공처럼.

객:4·19(자유)에서 출발한 지식인 중심의 한국문학이 한국사회를 매개로 하여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 민족문학운동으로, 민주운동으로 확대 심화해 갔다는 것. 세계성(보편성)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 그렇다면 이런 물음이 던져질 법도 한데….

주:자유의 실현이란 「역사의 끝장」일 테니까. 헤겔은 이를 나폴레옹의 예나침공에서 보아버렸고 그 제자 코제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서 보았고, F 후쿠야마는 구소련 해체(1989)에서 보지 않았던가.

객:「역사 이전」의 인간형이란 승인욕망(헤겔)을 기반으로 한 것 아닙니까.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근거이지요. 「역사 이후의 인간」이란 승인욕망(인간다움의 기품)도 없는 어떤 동물적 괴물(?)인지도 모르는데, 문학도 이런 인간형에 대응되겠군요. 코제브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사회의 물질적 풍요 속에 놓인 동물적인 인간형, 또는 자살조차 형식화한 일본식 스노비즘(세련성)의 인간형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 인간형에 대응되는 문학이란 어떠할까. 포스트모던 현상에 대응되는 그런 문학, 90년대 이후의 문학 등등.

주:니체가 말하는 「말기의 인간」의 출현과 이를 다루는 문학. 적어도 「원리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김윤식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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