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한국측 대표와 유럽연합(EU)측의 세 대표(이사회, 집행위원회 및 회원국)간에 무역·협력 기본협정과 공동정치선언이 서명됐다. 이 협정의 체결은 2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협정의 서명과 함께 한국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이들을 실속있게 잘 활용하느냐는 새로운 대내외적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이 기본협정은 무엇보다도 양측간 경제 전분야에 걸친 정보교환, 협의 및 협력강화를 통해 체계적인 관계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틀을 마련한다는데 취지가 있다. 그 대상은 무역, 산업, 정보통신, 해운, 과학기술, 환경, 에너지, 투자를 비롯하여 지적재산권 및 표준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관심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양측 대표로 구성되는 공동위원회 설치는 이 협정의 취지를 일관성있게 수행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한·EU 정상회담(필요시)을 포함하는 정치협력은 물론 문화·정보교류의 강화는 외교를 비롯한 전반적 유대발전을 통하여 상호이익의 추구를 뒷받침할 수 있다.○대외협상권 제고
필자는 오래 전부터 이 기본협정과 비슷한 내용의 협정을 EU와 체결할 것을 제안해왔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한국과 같이 개방경제를 지향할 경우 대외시장의 다변화는 필수불가결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단지 특정지역에 의존하는데 따르는 위협을 분산한다는 의의 뿐만아니라 그만큼 대외협상권도 높여줄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EU는 15개 회원국을 한 단위로 할 때 인구(3억7,000만명)나 무역규모(세계무역의 42∼43%)면에서 세계 제1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협정의 준비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EU는 복잡한 조직과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유럽공동체(EC)가 경제·시장통합을 추진하는 주체인 반면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설립된 EU는 EC를 포함하여 경제통화동맹(EMU)은 물론 정치, 외교, 안보협력 내지는 통합을 주관하는 총체적인 대명사이다. 또 EU가 주권국가간 체결된 조약에 기초하고 있기는 하나 배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부문이 있는가 하면, 많은 경우 회원국들과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취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EU와의 관계를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협정의 체결과 같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EU간 경제관계는 급성장을 나타내고 있는데 한 예로 작년의 경우 총무역규모는 345억달러, 상호 직접투자액(누적기준)은 47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국가간 경제거래가 활발해질수록 분쟁의 소지도 커진다는 점에서 협정에 의거한 사전적 협의와 조정의 노력은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27개 조문으로 구성된 협정문은 그 내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EU가 대등한 동반자의 입장에서 호혜성에 입각하여 새로운 협력의 단계로 접어든다는 인상을 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와는 달리 한국경제가 일정수준 발전을 이룩한 후 이 지역과 본격적인 거래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이 협정은 또 다른 지평을 열어준다는 의미도 있다. EU측으로는 급속히 성장하는 한국시장 뿐만아니라 이 기회에 중국 일본 아세안제국 등 동아시아 진출의 거점을 마련하는 포석일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유럽시장 통합의 노력과 병행하여 앞으로 EU가입이 예상되는 중·동유럽 그리고 구소련지역까지 펼쳐지는 세계 최대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과정이 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이 기본협정의 체결은 우연히도 한국의 OECD가입결정과 때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EU 15개 회원국은 OECD 전신인 유럽경제협력기구(OEEC, 1948년 설립)를 창설한 핵심국가들이며 현재 OECD의 운영에 있어서도 주축을 이루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OEEC는 서유럽이 경제선진화를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회원국간 상호 경제정책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 평가 및 조언, 무역자유화, 그리고 다각결제제도 도입 등은 유럽경제로 하여금 빠른 시일내 부흥을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OECD는 총체적으로 과거 OEEC의 기능과 전통을 이어 받았다. 따라서 이번 기본협정의 체결과 OECD가입은 한국경제가 이중으로 유럽경제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다양하고 개성있는 유럽내 소규모 개방경제들은 각각 그 나름대로 철학, 제도, 질서 및 관행 등 제측면에서 경제운영에 대한 경험과 슬기를 축적하고 있다.
○공동번영의 추구
한국경제의 입장에서는 이들 경제에서 시사하는 바를 얻어 우리 문화에 맞는 시장경제의 틀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그밖에도 필자는 유럽통합을 지켜보면서 아직도 잘 풀리지 않는 동북아질서를 자주 뒤돌아 보게된다. 물론 여건은 다르다 하더라도 전후 유럽통합의 과정과 경험은 동북아지역, 넓게는 아·태지역내 평화와 안정, 그리고 공동번영의 추구에 있어서 많은 교훈을 줄 수 있다. 끝으로 유럽과 좀더 가까워질 수 있는 대외적 조건은 갖추어졌다. 문제는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이 기회를 활용하는데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에 달려있다.<국제경제학>국제경제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