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연기·토막난 언어 곳곳 결점천지간에 사람하나 들고나는데 무슨 자취가 있겠는가. 신TV문학관의 세번째 작품 「천지간」(극본 이화자, 연출 박진수)은 이 한마디를 끝없이 되내며 인간구원의 문제에 매달린다.
그 답을 찾기위해 「천지간」은 지루할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의 상징들 가까이에 서성인다. 윤재민(김상중 분)은 어린시절에 친구, 군대에서는 수색도중 전우의 죽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건진다. 이름도 모르는 여인(심은하 분)은 사랑의 배신을 당해 자살하러 남쪽 끝인 완도 바닷가를 찾는다.
늘 생명에 대한 빚을 지고있다고 생각하는 남자와 생명을 버리려는 여인의 만남은 숙명처럼 우연히 이뤄지고, 마치 예정이라도 한듯 이틀만에 끝난다. 바닷가에서는 판소리 「심청가」가 절규하듯 들려오고, 마을 사람들은 장대비를 맞으며 바다에 뛰어든 불쌍한 원혼들을 달래는 굿판을 연다.
금방이라도 일을 저지를 것같아 재민을 불안하게 하던 여인은 죽지 않는다. 대신 재민과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과거를 지워버린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새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떠난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인간구원의 유일한 길은 사랑」이란 메시지가 남는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마치 의미도 모르는 글을 읽듯 메마르다. 영상으로 살아나지 못한 관념들은 반복되는 바람소리 파도소리에 묻힌다. 판소리 선생이 입으로만 소리를 하려는 제자들에게 『그것이 물에 뛰어들 심청의 심정이냐』라고 꾸짖듯, 여인의 모습에는 죽음을 앞둔 비장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설명없는 만남과 집착과 여관 주인의 초월적 세계관은 인물들의 어색한 관계와 토막난 언어들만을 남겨놓았다.
「천지간」은 윤대녕의 소설속에 안주해 단지 그것을 영상으로 구성하는 편안한 길을 택한 듯이 보인다. 문학을 단순히 따라가는 드라마는 드라마로서 생명을 얻지 못한다. 좋은 제작기술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새로운 영상언어와 틀로 재창조될 때 TV에서 문학향기도 살아난다. 처음 「길위의 날들」로 피어나던 그 향기가 슈퍼마켓에서 길을 잃더니 천지간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느낌이다.<이대현 기자>이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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