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쓰러뜨린후 “내가 시해” 소리쳐경교장 현관문을 열고 구두를 벗으니 선우진 비서 등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비서들이 『(2층)주석실에 강홍모 대위가 올라갔는데 이제 내려올 시간이 됐다』며 자리를 권해 잠시 비서들과 잡담을 나눴다.
강대위가 2층(백범의 집무실)에서 내려와 일어나 경례를 했더니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내게 웃으며 『고마웠어요』라고 말했다. 강대위가 나간뒤 선우비서가 『(백범이) 혼자 계시고, 조금 있으면 손님이 많이 올지 모르니 지금 올라 가시죠』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하고서 그 전처럼 올라가는데 허리에 찬 권총을 풀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문 앞으로 가 깍듯이 경례를 했다. 선생이 『오, 들어와』 하며 일어나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 뒤 앞자리에 앉았다. 선생이 『어떻게 하다보니 안군 얼굴을 보는 것도 오랜만인 것같군』이라고 해 『요즘 포병에 비상이 걸릴 때가 많습니다』며 얼버무렸다. 선생이 『신문을 보니 일선(38선) 여러 곳에 포병이 나가 있더구먼』이라고 말해 『저도 옹진으로 출정가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뵙고 인사하려고 들렀습니다』고 말했다.
선생이 『그래, 아주 일선에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근심 비슷한 얼굴을 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갑니다』라고 얘기해 주었다. 선생이 『그러면 됐고』라고 말했다. 이어 선생이 『요즘 이상한 사람들이 대문 밖에 왔다갔다 한다는 소문이 나돈다. 오늘 왔으니까 됐다. 당분간 여기에 출입하지 마라』고 말해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선생은 『김약수(당시 국회부의장·국회 프락치사건에 연루)가 왔다간 뒤부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국회 프락치사건 때문에 선생님을 둘러싸고 있는 과잉 충성파 도배들을 미워하고 있는데 선생님도 좀 자중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선생이 대뜸 『뭐 네가 그 따위 소리를 해』라고 고함을 쳤다. 내가 한 마디 더 말대답을 했더니 욕이 나왔고 그 다음엔 책까지 날아왔다. 순간 「무조건 아침에 올 때 결심한대로, 영감을 위해서라도 내 손으로 시해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속을 스쳤다. 그저 나도 모르게 총을 빼자마자 한 발을 갈겼다. 머리를 맞았는지 말도 못하고 팍 쓰러졌는데 그저 무조건 몇 방을 더 쏜 기억이 난다.
나도 죽으려고 머리에 총을 겨누었는데 불현듯 「내가 죽을 사람이냐. 죽기전에 재판이라도 하구…. 재판을 받으면 한독당에 빨갱이가 많은 것과 내가 한독당을 미워한다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나왔다. 유리창 너머로 중천에 뜬 해가 보였다. 해를 바라보며 죽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계단을 내려 왔다.
내려 왔더니 비서들은 총소리도 못 들었는지 그냥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관문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경관들이 총을 들고 뭐라고 소리를 치면서 뛰어 들어왔다. 무의식중에 총을 마룻바닥인가 계단에 내던지면서 『제가 김주석을 시해했어요』하고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비서들이 책상같은 것을 마구 던졌다. 점점 정신을 잃어갔다.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가 『죽이지 말라, 죽이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조사위:안두희는 백범을 시해한 직후 경교장 주변에 포진해 있던 헌병들에 의해 헌병사령부로 압송됐다).<이동국·김정곤 기자>이동국·김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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