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법 개정을 놓고 정치권과 사회일각에서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먼저 논란의 배경과 요체를 살펴보자. 93년에 개혁입법 차원에서 안기부법이 개정되면서 안기부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및 제10조(불고지)와 관련한 수사권을 잃게 되었다.이에따라 검·경이 대신 수사를 맡았지만 유독 이 조항과 관련하여 수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배경은 암울했던 우리 정치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과거의 안기부는 정권안보의 선봉역할까지 해내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었다. 굴곡진 정치공작에 깊숙이 개입하는가 하면, 정치적 목적을 은폐한 채 수사권행사를 빌미로 행해진 인권유린의 사례도 지적되어 왔다.
○견제장치 마련돼
지금처럼 대공수사권을 제대로 행사못하는 안기부의 처지를 단순하게 자업자득으로 돌리기에는 권위주의 시절의 먹구름이 너무나 짙게 깔려 있었다. 그렇기에 안기부는 다시 태어나려는 자성의 노력을 부단하게 행해왔다.
대공수사권 박탈 이외에도 안기부법에 직권남용의 금지(제11조)와 직권남용죄(제19조)가 삽입되었다. 게다가 국회에 정보위원회가 설치되어 안기부 예결산도 다뤄지고 정보수집의 현황보고도 이뤄지고 있다. 이렇듯 정보위가 안기부의 실질적인 업무활동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견제기능의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초월적지위를 누렸던 국가기관이 비로소 제자리로, 즉 본연의 업무수행의 기회를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다수의 대공수사관들은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왜 그런가.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정보수집을 하라고 하니 업무활동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간첩의 암약과 친북동조자 및 행동파들의 준동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수사권이 없으니 이들을 초동단계에서 효율적으로 처리할 길이 막혀있다.
○대공수사 한계 노출
일부 법개정 반대론자들은 과거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어둡고 치떨리는 악몽의 재연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를 이해못하는 바가 아니다. 이들은 대공기관의 무능함을 성토하는데만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근본적으로 문제해결에 참여하려는 의지의 표출에는 소극적이지 않나 생각된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며 마땅한 대안책이 내세워져야 한다. 우리사회를 뒤흔들었던 한총련 소요사태와 무장공비의 출현이 안기부법 개정환경을 긍정적으로 유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 일련의 사례는 안기부의 수사권박탈 이후에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귀결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음지에서 일한다는 자체도 힘겨운데 그나마 손발을 잘라놓았으니 우리 대공기관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헤어나기 힘든 무력감에서 허덕이고 있다.
정보수집과 수사권을 분리 독립시킨 제도는 주로 연방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수사권박탈로 인한 대공업무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감안해볼때 이런 제도 도입이 우리에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잘 드러나고 있다.
하여튼 안기부법 개정시에 추상적인 의미를 지닌 기존의 법규정도 손질하고 법적용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밝혀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방향에서 기존의 법을 다듬어준다면 대체입법의 필요성은 없어진다.
정치권의 흐름이 급격히 바뀌면서 우리에겐 이미 개혁의 시대가 열렸다. 개혁은 곧 시대정신의 산물이며 시대적 공동체의 정신이자 상징으로 다가왔다. 개혁은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며 과거의 악령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지고 있으며 우리 국민들의 의식도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변화속에서 안기부 수사권축소는 현정권이 일궈낸 개혁의 상징적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보차원 개정을
그러나 이제 우리는 실제적인 성과도출로 연결시키려는 신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상징적인 업적에 연연해선 안되며 제도운용의 문제점이 드러나면 과감하게 손질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안기부법 개정문제가 더이상 뜨거운 감자로만 취급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입법이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역사의 결과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안기부법과 국가보안법도 우리 역사속에서 도출되었던 침전물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냉철한 사고와 신중한 사려로 개정론에 잣대를 제시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대공기관의 무능함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적절한 잣대를 찾아내야 한다. 국가안보는 당리당략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또한 편향된 정치적 논리로 풀어서도 안된다. 안기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밀어준 뒤 질책과 비판이 있어야지, 효율적인 임무수행에 제동부터 걸려는 의도는 마땅히 재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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