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조금은 우울한 자화상”/대중문화·성에 매몰돼가는 젊은 세대의 그늘 그려백민석씨(25)의 장편 「내가 사랑한 캔디」(김영사간)는 신세대 소설이다. 그렇지만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의 90년대 소설은 거의 예외없이 영화와 팝과 재즈의 문화를, 심각하지 않은 연애와 섹스의 풍속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탈이데올로기라는 한국사회변화의 세례를 받았지만 세상의 문제와 전혀 무관하게 소설을 쓴다. 그 소설은 자폐적이고 자기과시적이다. 백씨의 소설은 동시대 작가의 징후를 뚜렷이 반영하지만 그들의 서투른 자폐와 다른 수법을 보여준다. 계간 「문학과사회」 95년 여름호에 중편으로 발표했다가 560장으로 분량을 늘린 소설 「내가…」는 90년대식 소설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작은 수확이다.
소설은 화자인 20대 초반의 남자와 그의 애인이 옷을 벗은 채 미국의 3대 포르노 여배우가 동시에 등장하는 비디오를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착각 속에서 화자인 남자가 고교 3학년부터 대학 초년생까지, 90년대 초반의 3년여 세월을 회상하는 것이 줄거리다.
고3, 끽연과 모의고사, 수업거부로 얼룩진 시절에 그는 「캔디」라는 연인을 만난다. 「캔디」는 여학생이 아니라 팝가수 조지 마이클에 열광하는 같은 학교의 남학생. 그들은 타인의 의혹이나 도덕적 자괴감이 빠져나간 진공 같은 상황에서 정신은 물론 육체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다. 「캔디」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는 재수의 쓰라린 세월을 맞는다.
대학에 들어간 「나」의 꿈은 총잡이 소설을 쓰는 것. 무전유죄를 부르짖은 탈주범 지강헌처럼 도시 한복판의 외로운 총잡이 이야기를 꿈꾸며 「나」는 이한열과 김귀정이 죽어간 자리에서 화염병을 쥐고 「타조떼」처럼 몰려다닌다.
결국 학생운동이 막을 내리는 세상에서, 「캔디」와 벌였던, 되새겨 보면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랑놀이의 파경에서 「그해 가을은 마치 총 한 방을 맞은 싸구려 엑스트라 악당처럼 쓰러져가고」 있었고, 「나」는 권태에 빠진 어른이 돼가고 있었다.
소설의 문체는 빠르다. 그의 대화는 애교있고 다종다양한 대중문화가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문화를 누리는 젊은 세대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보여주는 데서 그는 다른 젊은 소설가들과 다르다. 현재가 지글지글 불쾌한 냄새나 풍기며 빨갛게 익고 있는 닭꼬치 다섯 개에 불과하다는 의식은 소설 속에서 「우리, 불쌍한」이란 자조적인 말로 표현된다.
백씨는 새로운 감성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창조하면서도 신세대의 모습이 즐거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사회의 갈등을 가벼운 풍경으로 접근하는 그의 소설이 결코 빈약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런 무게중심 탓이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백씨는 지난해 살풍경하던 달동네 판자촌에서 유년시기를 보낸 젊은이의 내면을 담은 「헤이, 우리 소풍 간다」를 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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