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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부건빌섬/미리웅 과도정부총리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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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부건빌섬/미리웅 과도정부총리 피살

입력
1996.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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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독립투쟁 갈수록 첩첩산중/파푸아뉴기니와 평화협상 주도/범행배후 안개속 내전 격화 우려태평양 남서부 오지, 솔로몬 제도의 부건빌섬.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3년 구일본군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산본오십륙) 대장이 비행기 피격으로 사망한 곳이다. 그후 반세기 이상 세계인들에게서 잊혀졌던 이 섬이 또다른 사망사건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12일 밤 부건빌섬의 과도정부 총리 테오도르 미리웅이 암살된 것이다. 미리웅은 이날 자택에서 가족이 보는 앞에서 괴한의 총탄에 맞아 절명했다. 미리웅 총리는 파푸아뉴기니로부터 8년간 독립투쟁을 벌여온 인구 20만명의 부건빌섬에 평화를 정착시킬 마지막 기대주였다.

미리웅 총리는 한때 부건빌섬 무장독립운동 세력인 부건빌혁명군(BRA)의 고문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월등한 무력을 가진 파푸아뉴기니 정부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계속하기 보다는 협상에 의한 평화를 선택했다. 지난해 4월 파푸아뉴기니 정부에 의해 과도정부 총리에 임명된 후 그는 완전한 독립보다는 자치권 획득에 무게를 두는 현실적인 점진독립 노선을 강화했다. 그의 암살범이나 배후단체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미리웅 총리가 과격노선의 토착 BRA와 적대관계인 파푸아뉴기니 군부, 양측으로부터 배척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피살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열대의 낙원으로 불리던 부건빌섬에 내전이 잉태된 것은 서구 식민주의가 뿌리고 간 씨앗 때문이다. 1차대전전 독일령이었던 이곳은 전쟁후 파푸아뉴기니와 함께 호주의 위임통치령이 됐다. 호주는 그러나 75년 파푸아뉴기니를 독립시키면서 종족이 전혀 다른 부건빌을 파푸아뉴기니에 편입시키고 말았다.

부건빌 독립운동의 총성이 울린 것은 88년. 원주민과 파푸아뉴기니 정부 및 호주 구리채굴업자간 협상이 깨지면서부터다. 부건빌은 세계최대 구리 산지의 하나로 구리수출은 파푸아뉴기니 총수출의 절반에 달한다. 호주 구리업자들은 지금까지 파푸아뉴기니 정부를 등에 업고 원주민의 이익을 무시한 채 무차별 채굴, 섬을 황폐화했다. 환경파괴 방지와 보상 요구가 좌절되자 원주민들이 총을 든 것이다.

무장투쟁이 일어나자 파푸아뉴기니 정부와 호주는 합동작전을 전개, 89년부터 부건빌을 완전 봉쇄해 버렸다. 원주민들은 무기·의약품·식량 공급이 끊긴 가운데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8년간 1,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건빌 내전은 미리웅 총리의 암살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배연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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