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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철 지나면 헐값 「기성복의 일생」/전성기 생후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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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철 지나면 헐값 「기성복의 일생」/전성기 생후 3개월

입력
1996.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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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수명은 3년「평균수명 3년, 전성기―태어나서 3개월까지」

우리가 입는 의류를 생명체에 비유한다면 그 일생은 이렇게 요약할수 있다. 대부분의 기성품이 그렇듯이 대량생산되는 의류는 출고 직후 신상품으로 최상의 대접을 받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유통단계를 거칠수록 그 대접이 격하되며 값도 추락한다. 출고직후 수십만원대를 호가하는 여성패션의류도 3년정도가 지나면 가격표도 사라진채 마대자루에 무더기로 담겨 무게단위로 팔리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의류가 어떻게 유통되며 그 가치는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해 본다.

○2개월후 값은 절반으로

▷출시◁

이번 겨울 신상품을 예로 들면 의류업체들은 이미 지난 봄에 디자인을 끝내고 신상품의 샘플을 만들어 8월께 품평회를 가졌다. 업체 대리점과 백화점 구매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신상품 품평회에는 여성복의 경우 보통 200여개종의 제품이 한꺼번에 선보이기도 한다. 이 때부터 구매주문이 시작되고 업체들은 품평회결과에 따라 생산량을 결정, 9∼10월초 신상품이 출시된다.

계절감이 짙게 밴 신상품들은 최소한 2개월간 정상가로 판매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그러나 최근에는 불경기가 깊어지면서 신상품 출시와 더불어 20∼40%의 세일판매가 이뤄지는 경우도 적지않다. 또한 의류업체들의 자체 세일기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화점 등의 정기세일로 이어져 상품의 신선도를 발산하는 최대의 절정기가 세일에 파묻히기도 한다.

2개월간의 정상가 판매기간이 끝나면 가격은 절반이상이 떨어져 백화점이나 자체매장에서 신상품 거르기 세일로 막판 불꽃을 피운다. 출시 3개월, 이 기간이 끝나면 의류는 더이상 신상품이 아니다.

○재고낙인땐 「땡처리」행

▷재고처리◁

3개월을 넘겨 철이 지난 의류들은 계절 마지막 사은세일에 넘겨진다. 이때 가격은 정상가의 30∼40%에 불과하다. 여기서도 팔리지 않는 물건들은 재고의 낙인이 찍혀 상설 할인매장 등으로 옮겨진다. 이렇게 발생하는 재고량은 보통 여자의류의 경우 전체 생산량의 평균 40%대를 차지한다. 일부 품목들은 백화점에 남아 균일가 세일이라는 명칭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업체들은 재고품을 다음시즌까지 자체 창고에 보관했다가 평소 거래를 맺고 있는 판매대행사에 넘겨 호텔과 지방의 각 조합강당 등에서 이벤트 판매전에 나선다. 그러나 유통망이 열악한 일부 업체들은 계절이 바뀔때마다 찾아오는 일명 「땡처리」업자들로 부터 거액의 현금을 받고 남대문과 동대문지역의 시장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땡처리업자들에게 넘어간 의류들은 최소한 2년정도 묵은 상품들이어서 정상적인 의류의 일생은 길어야 3년이라는게 업계의 평가다.○묵은 여름옷 남미수출도

▷중고 수출◁

땡처리를 통해 재래시장에 나온 상품들은 또다시 새로운 가치변화를 맞는다. 이들중 여름상품들은 최근들어 칠레 등 남미국가들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사계절 상품들은 중국, 추동상품들은 대부분 러시아를 중심으로 고급 브랜드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린다. 이들 상품은 피스당 단가가 매겨지지만 5년이상된 제품들은 무게로 산정되는 것이 이곳의 일반화한 가격산정 방식이다.

◎재고처리 전문 「땡처리」 업자들/정상가 5%값에 사들인후 이윤 얹어 특판장서 헐값 판매

의류업체들에는 해마다 쌓이는 2∼3년 묵은 악성 재고 처리가 최대의 골칫거리가 아닐수 없다. 이 악성재고품을 정상가의 5%미만 가격에 대거 현금으로 사가 업체의 고민을 덜어주는 「떨이 구매」전문업자들이 있다.

「땡처리」전문업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의류업체들의 깊은 속사정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 이를 이용해 큰 거래를 하는 유통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시장 도매상 및 특별할인매장과 이동 특판매장 등 활동무대가 어딘가에 따라 특징도 각양각색이다. 이들중 일부는 의류업체들과 직거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중개인격인 「낫가마」들에 의해 물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땡처리」 전문업도 보다 세밀하게 구분지어 진다.

이들의 구매방식은 한 벌로 가격을 산정하는 게 아니라 무게로 가격을 측정할 만큼 대단위 규모. 한번에 몇억원씩 거래되는 일이 보통이다.

이들은 이렇게 구입한 제품들을 잘 세탁해 2.5∼4배의 이윤을 붙인뒤 시장이나 특판장에서 헐값으로 판매한다. 예를들어 정상가 15만원의 여성재킷의 경우, 이월상품은 1만5,000원, 2년째 재고품은 7,500원가량에 구입해 4만∼5만원을 받고 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속칭 「메이커」제품을 4만∼5만원에 살수있다는 것이 이 거래의 매력이다.

서울 동·청 평화시장에서 주요한 상인군을 형성하는 땡처리 전문업자들은 남미와 러시아등 세계 각지의 「바이어」들을 상대로 중고거래를 하기도 한다. 고객중 80%이상이 외국인인 이 국제시장의 매출규모는 「베일에 싸인 황금알 거위」로 국내 의류유통의 끝자락이 되고 있다.<장학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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