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짓고 미 도피 “더이상 안된다”/경제사범 등 대부분 압송 가능/현 도피자 귀국·3국행 불가피/정식발효 비준 등 절차남아 빠르면 내년말 예상한미간 범죄인 인도조약협상이 사실상 타결됨으로써 국내에서 죄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피하는 범죄자들을 우리정부가 넘겨받아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그동안 미국은 우리나라 범죄자들이 가장 선호해 온 「도피의 천국」이었지만 양국간에 범죄인인도 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아 우리 정부가 이들을 잡아들여 우리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특히 사기나 횡령, 외화 밀반출 등 각종 경제사범 등의 미국 도주 사례가 빈번, 우리 수사당국에 접수된 재산피해액만도 3천5백억원대를 넘어섰지만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조약이 발효될 경우 국내법을 위반한 범죄자들의 미국도피 행각에 빗장이 걸리게 된다.또 현재 미국에 체류중인 범죄자들도 귀국해 재판을 받거나 다른 나라로 도피처를 옮기든가 양자택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한미 양국은 인도대상범죄의 범위를 「양국간의 법률상 1년을 초과하는 자유형 또는 보다 중한 형」으로 잠정 합의했다. 따라서 사기·횡령 등 경제사범과 살인·강도·강간 등 일반 형사범 등 대부분의 인도가 가능해진다.
특히 조세·재정범의 경우 인도요청을 받은 피청구국의 법률이 동일한 종류의 조세, 관세 또는 외환관리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인도요청을 거절할 수 없도록 해 탈세범이나 재산도피사범을 우리나라로 압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미수범이나 음모가담자도 인도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됐다고 미국으로 도망간 모든 범죄자들을 인도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정치범과 군사범은 인도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범죄인 인도조약의 일반적 원칙은 이번에도 예외없이 유지됐다. 이 때문에 실제 운용과정에서 정치범에 대한 판단기준 등에 대해 양국간에 이견이 제기될 소지를 안고 있다.
이 조약은 또 「상대국이 인도대상 범죄에 대한 소추, 재판, 형의 선고 또는 집행을 위해 범죄인의 인도를 요청하는 경우」를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어 단순수사를 위한 인도요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국민의 인도요청에 대해서는 거절할 수 있도록 하되 요청받은 국가가 스스로 소추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번 조약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자국민을 이유로 인도를 거절할 수 없다는 「영미법주의」를 채택할 것을 고집하던 미국측이 대륙법체계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결과라는 게 정부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한국인이 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한국으로 도망할 경우 우리정부는 미국측의 인도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대신 국내법에 따라 형사소추하면 된다.
조약이 실제로 체결돼 발효되기까지는 조약문안확정, 가서명, 국회비준 등 넘어야할 과제가 적지않아 빨라야 내년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93년 11월 한미간에 체결된 형사사법공조조약이 3년가까이 되도록 미발효상태로 남아있는 점을 감안할 때 범죄인 인도조약의 경우 조속한 발효가 더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양국이 9년여를 끌어온 협상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이던 「자국민 인도불허」원칙에 합의한 만큼 조약의 발효는 절차상의 시간문제만 남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김승일 기자>김승일>
◎한미 교섭 경과/양국 법 체계 달라 3차례 절충/형사사법공조조약은 93년 11월 체결/조세·재정범 포함에 미 난색 결국 수용
정부는 87년부터 미국 등 주요 대상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체결을 위한 교섭을 시작하는 한편, 88년 8월 범죄인인도법에 이어 91년 4월 국제형사사법공조법을 제정해 국내법 체제를 정비했다.
미국과의 최초교섭에 따라 양측은 형사사법공조조약을 먼저 추진하고, 범죄인인도조약을 나중에 체결키로 했다. 상호간 수사 및 재판기록 증거 증인 등을 넘겨주는 형사사법공조조약은 93년 11월 체결됐다.
하지만 범죄인인도조약은 대륙법(우리측)과 영미법체계간의 차이점에서 비롯된 시각차이로 쟁점이 생기면서 3차에 걸친 절충교섭을 벌여야 했다.
94년 6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제1차 실무교섭회담 이래 제2차(95년 12월·서울) 제3차(96년 10월7∼8일·워싱턴)회담에서 논의된 주요 쟁점은 ▲자국민 인도여부 ▲조세·재정범 포함 여부 등이었다.
외국거주 자국민에 대한 법적 관할권이 없는 영미법체계에 따르면 자국민도 인도 돼야한다는 것이 미국측의 입장이었다. 이에반해 대륙법체계를 따른 우리법은 외국에서 자행된 국민의 범죄도 우리의 형사관할권에 포함되므로 반드시 자국민을 인도할 필요는 없다. 양측은 이 점을 절충, 「자국민 불인도를 원칙으로하되 피청구국의 권한있는 당국의 재량적 판단에 따라 인도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
조세·재정범 포함 여부는 법체계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범죄인인도조약 관행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이미 19세기 이래 세계 1백여국과 조약을 맺어왔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만 해도 조세·재정범죄는 파렴치범이나 반인륜적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다. 미국측은 이미 이뤄진 대다수 타국과의 조약관행을 들어 난색을 표명했다가 결국 우리의 입장을 수용했다. 우리나라는 90년 오스트레일리아와 조약을 체결한 이래 캐나다 등 8개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했으며, 멕시코 태국 등과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조약문안에 합의한 상태이다.
홍승목 외무부조약과장은 『조약 협상 타결은 우리 형사법에 대한 미국의 인정』이라고 말했다.<장인철 기자>장인철>
◎미 도피사범 모두 백35명/박희도씨 등 12·12 3인방 포함/경제계 거액횡령·부도 민병일·백학기씨 대표적/조직폭력배 두목·부인청부살해 등 강력범들도
한미간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을 눈앞에 두고있어 미국으로 도피한 전직 고위공직자 등 주요인사들의 리스트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정당국이 파악중인 미국 도피사범은 1백35명. 그중 눈에 띄는 인사는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12·12사건의 「공신」인 박희도 전 1공수여단장, 장기오 전 5공수여단장, 조홍 전 수경사헌병단장등 「3인방」이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돼 사법적 심판을 받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들은 지난 연말 5·18특별법제정을 전후해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도피, 화를 면했다. 이들은 모두 12·12당시 「경복궁모임」에 참석해 반란지휘부를 구성했던 반란군의 핵심 장성으로 모두 구속대상자들이다.
검찰 확인결과 박씨와 장씨는 미국에 체류중인 것으로 밝혀졌으나 국내인사들과는 연락이 거의 끊긴 상태다. 조씨는 캐나다로 도피했으나 정확한 소재파악이 되지 않아 미국에 거주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 재계·금융인사들로는 지난해 7월 회사가자금 6백90억원을 횡령한 뒤 미국으로 도피한 전충북상호신용금고회장 민병일씨(57)와 경기침체에 따른 자금난으로 1천4백억원대의 부도를 내고 도피한 동진주택 대표 백학기씨(57)등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미국 인터폴과 협조해 소재수사등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 이미 영장이 발부됐기 때문에 소재가 파악될 경우 범죄인인도조약이 발효되는 즉시 미국측으로부터 신병을 넘겨받을 수 있다.
한편 미국으로 도피한 강력범죄자들도 많다. 국내 3대 폭력조직중 하나인 OB파 두목 이동재씨는 반대파의 공격을 받아 부상한뒤 믹구으로 도피, 「범죄와의 전쟁」으로 서방파 두목 김태촌과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이 잇따라 구속된 뒤에도 유일하게 사법처리를 피했다.
또 부인이 이혼소소을 제기하며 50억원의 위자료를 요구하자지난해 9월 미국으로 출국한뒤 교포폭력배를 「청부업자」로 고용, 부인을 살한 홍종근씨(56)도 검·경의 핵심 검거대상이다.<이태희 기자>이태희>
◎특별기고/한미 범죄인인도조약 타결에 부쳐/관련 국내법 정비 서둘러야/이장희 한국외대교수·국제법
한미 양국이 11일 범법자의 신병인도를 보증하는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에 상당부분 의견을 같이 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동안 미국은 약 1만명에 달하는 한국인 범죄인의 도피천국이었다. 이제이 조약이 공식타결돼 양국의 국회비준 동의를 거쳐 내년 말 발효하게되면 양국은 형사사법 공조의 새로운 길을 열게 된다.우선 범죄인인도조약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범죄를 막기위한 형사사법 공조에는 증인 및 감정인신문, 물건 인도, 압수, 수색 검증, 문서 송달, 정보제공외에도 범죄인 인도가 포함된다. 국가간 형사사법 공조를 위한 대표적인 조약으로는 형사사법 공조조약과 범죄인 인도조약이 있다. 대체로 형사사법 공조조약은 수사기관이 형사사건의 수사, 증인등에 대해 기소전에 협조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93년 11월 형사사법 공조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범죄인 인도조약은 기소후 절차를 중시, 한 국가에서 범죄를 행한 자가 타국으로 도망갔을 때 외교절차를 통해 범죄인을 인도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범죄인 인도는 문명제국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지만 국제법상 일반원칙으로는 국가가 범죄인을 인도할 의무는 없다.
범죄인 인도여부는 국가의 자유지만 조약상의 의무나 국제예규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범죄인도조약이 체결되면 양국이 상호 범죄인 인도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4가지 중요원칙
범죄인 인도에는 고려해야 할 4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첫째 쌍방 가벌성의 원칙이다. 인도청구된 범죄가 인도 청구국 및 피청구국의 형벌법규에 위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정치범 불인도원칙으로 정치적 범죄를 범한 자를 인권보호 차원에서 인도대상에서 제외하는 원칙이다. 셋째 자국민 불인도 원칙으로 외국에서 죄를 범하고 도망해온 자국민일 경우 청국구의 청에 응하여 인도하지 않는 원칙을 말한다. 이 원칙은 대체로 형사관할권 행사에서 속인주의원칙을 중시하는 대륙법계 국가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다. 넷째 특정성의 원칙으로 범인을 인도받은 국가는 인도범죄에 대해만 소추하거나 또는 처벌할 수 있다는 원칙을 말한다.
○일방해석 자제를
끝으로 한미 범죄인인도조약체결에 관해 당국에 3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우선 그동안 한미간 범죄인 인도조약협상은 대륙법과 영미법체계의 차이 및 양국의 첨예한 이해로 지연되어 왔다. 협약의 내용에 못지 않게 실제 운용에서 한미행정협정처럼 일방적 해석은 서로 자제해야할 것이다. 둘째 탈냉전후 국제범죄는 급속히 날로 전문화 조직화 국제화하고 있다. 이 국제범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현행 범죄인인도법의 엄격성, 철차의 복잡성 등 국내법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또 국제범죄수사체제가 분산돼있어 효율적인 국제범죄수사를 위해서라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셋째 한국은 일본을 비롯한 더 많은 아시아 국가와 사법공조를 해야 하며 국제범죄방지 및 협력을 위한 조약체결을 서둘러야 한다. 조약을 체결하고 있는 나라는 호주, 스페인, 캐나다, 필리핀 등 8개국이며 아시아국가는 유일하게 필리핀 뿐이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국가가 국내범인의 중요한 도피처라는 것을 감안할 때 양자조약을 비롯해 범죄인인도 아시아 지역조약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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