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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원학동 정자들(문화유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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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원학동 정자들(문화유산을 찾아서)

입력
1996.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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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치는 골짜기 숱한 정자엔 옛 청류명사들의 문향 “가득”지리산의 동남쪽 우렁찬 산줄기 속에 자리잡은 거창은 먼저 양민학살사건이란 비극적인 상처를 간직한 채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 땅은 소백산맥에서 뻗어내린 지리산과 덕유산, 가야산 등 이름높은 산자락이 베풀어 낸 혜택으로 일찍이 산자수명한 은자들의 고장이었다.

고려말 조선의 개국을 반대하며 충절을 지키기 위해 낙향한 선비들로부터 뿌려진 이 문화적인 전통은 조선중기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때 거창은 함양, 산청 등 이웃고을들과 함께 청류명사들이 찾고 싶은 이상향의 땅이었다. 굽이치는 골짜기마다 자연의 숨결을 벗하며 세워진 수많은 정자와 누각들이 그날 향기로웠던 선비들의 자취를 말해주고 있다.

거창읍에서 24번국도를 타고 다시 37번국도를 따라가다 영승리에서 마리 위천 북상을 거쳐 남 덕유산 자락으로 접어들면 그 이름마저 헤아리기 어려울정도로 많은 정자가 길과 길을 이어준다. 이곳은 덕유산 서북쪽 산록의 무주구천동에 비견될 만한 아름다운 계곡인데 여기에는 자연의 풍취와 함께 선비들의 문향이 어우려져 있기에 더욱 나그네의 발길을 향기롭게 한다.

이곳을 이름하여 원학동이라 하는데 이는 금원산과 학담계곡에서 따온 말이다. 병자호란때 인조가 삼전도에 치욕을 당하자 칼로 자신의 배를 가르며 자결을 시도했던 동계 정온선생, 그리고 퇴계 이황선생과 남명선생 등 당대의 거유들과 사귀며 은자의 삶을 살았던 갈천 임훈선생이 이 골짜기의 좌장격인 어른들이다.

손꼽을 수 있는 정자로는 위천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자리잡은 건계정 수승대 귀연서원 요수정 도계정 관수정 육모정 등이다. 수승대는 그 옛날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에 위치했는데 그때 근심어린 마음으로 사신들을 떠나 보냈다 해서 수송대였다. 그후 1543년 퇴계 선생이 이곳의 뛰어난 경치를 전해듣고 시 한 수와 수승대란 이름을 지어보내 그후 수승대로 바뀌었다고 한다. 수승대는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수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그윽한 풍치를 보여준다. 특히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귀연암에는 퇴계 선생이 쓴 수승대 명명시와 함께 여러 시인들의 시들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가는 길은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거창 가는 버스를 타고 내려가 거창읍에서 수승대 국민관광지 가는 군내버스를 이용한다.<이형권 역사기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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