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연체에 금융기관 부실 초래 사회문제화소비가 미덕인 미국에서도 무절제한 카드 사용으로 인한 과도한 낭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현금이 줄어드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데다 외상과 할부로 비싼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 카드만 있으면 겁이 없어지기는 미국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신나게 쓸 때와는 달리 대금 정산을 늦추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미국 카드회사의 부채가 늘고 있으며 파산하는 개인계좌도 급증하고 있다.
카드 발행업체들은 대금을 연체하는 고객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사용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 있지만 무절제한 카드 사용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은행이 금융난에 빠졌을 때 지급보증을 하는 미 연방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지난 2·4분기중 시중은행이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악성대출금으로 장부 정리한 금액은 38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6%나 늘어났다.
신용관리가 철저한 미국 은행들이 카드 때문에 이처럼 회수하지 못할 대출금을 많이 안고 있는 것이다. 크레디트 카드에 의한 악성대출금이 미국은행의 전체 대출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48%로 92년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월 1%, 연 10% 이상의 이자를 먹고 사는 은행이 이같이 돈을 빌려주고 많이 떼이면 장사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이같은 수치는 카드로 물건을 이리저리 사고 나서 갚지 않는 돈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체 미국인들이 카드를 쓰고 은행에 진 빚은 7월말 현재 4,540억 달러로 전체 소비자 금융대출액의 39%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카드 외상이 은행이나 개인 소비자에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개인 소비가 늘어나 미국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경고 메시지도 최근 부쩍 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9월12일 『카드 소지자들이 은행에 지고 있는 빚은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FDIC는 올해 카드를 사용한 뒤 대금을 결제하지 못해 폐쇄시킬 계좌(개인파산)가 미국내에서 100만개를 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드 대출로 인해 떼이는 돈이 많아지면서 카드 발행업체들은 우량 고객에게 주던 각종 혜택을 줄이고 회비를 받는 등 자구책을 쓰기 시작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금융회사인 GE 캐피털은 지난달 GE 마스터카드 회원들에게 1년에 1인당 25달러씩 회비를 받는다고 발표했다. 회원들에게서 똑같은 금액의 회비를 받되 매달 정상적으로 카드 대금을 지불하는 사람에게는 최고 318달러를 주고, 대금정산을 늦게 하는 회원에게는 30달러의 손해를 안기는 시스템을 운영키로 했다. 돈을 제 때 내면 그만큼 혜택을 받지만 늦추면 불이익이 있다는 사실을 카드 소지자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다른 카드 발행업체들도 GE의 방식을 줄줄이 따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 자동차회사인 GM도 자동차 구입자에게 주는 골든 크레디트 카드의 혜택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GM은 골든 크레디트 카드 소지자에게 연간 1,000달러씩 7년간 7,000달러의 대출을 해 주었으나 앞으로는 그 규모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전화회사인 AT&T도 유니버설 카드 소지자를 대상으로 보다 까다로운 규정을 만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크레디트 카드 뿐만 아니라 고객카드도 소비를 부추긴다. 슈퍼마켓이나 음식점들은 고객 카드 소지자들에게 5∼10% 정도 물건값을 깎아 준다. 때문에 돈을 아끼려는 미국인들은 고객카드를 발행한 상점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된다.
조사연구기관인 마켓 팩트의 통계에 따르면 25∼34세의 젊은층 가운데 67%가 고객카드에 의한 구매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부유층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고객 카드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크레디트 카드 발행 건수는 현재 미국인구의 2배 가량인 4억5,000만개에 이르고 있다. 직장인이 현금은 10여 달러만 갖고 다니면서 카드는 수십장 휴대하고 있는 것은 흔한 일이다. 플라스틱에 전자감응장치를 부착한 카드는 이제 현금과 다름없이 쓰인다.
플라스틱 카드는 화폐를 대신하는 새로운 통화로 각광을 받아왔다. 그러나 돈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고 개인지출을 늘게 함으로써 개인 파산과 금융기관의 부실을 초래하고 있다. 화폐유통이 가장 활발한 미국에서 카드의 신용도가 오르막을 지나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 카드업계 현황/은행계 아성에 카드전업사 거센 도전/치열한 경쟁 발급 남발 적잖은 부작용
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크레디트 카드 산업은 은행이 쥐고 있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시티은행, 체이스 맨해튼은행, 시카고 제일은행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은행 고유의 여수신업무에다 카드업무를 겸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카드 사업만을 하는 전업 기업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크레디트 카드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새롭게 부상하는 전업 기업은 퍼스트 USA, 캐피털 원, 어드벤터, MBNA 등이다. 이들 전업 기업의 크레디트 카드 시장점유율은 91년 7.6%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17.6%로 늘어났다. 93년부터 95년까지 퍼스트 USA는 478%, 캐피털 원은 420%, 어드벤터 281%, 퍼스트 유니온 256%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또 제너럴 일렉트릭, AT&T, GM 등 제조업체들도 카드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이처럼 크레디트 카드시장을 놓고 기존 은행과 신생 전업기업과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카드 발행업체들은 고객확보를 위해 카드를 남발하게 됐다. 카드업체들은 신용력이 약해 그동안 외면해 왔던 저소득층에게 까지 카드를 발급해 주고 있다.
올들어 대금을 못받고 장부정리하는 금액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처럼 카드업계의 치열한 시장 경쟁이 빚어낸 부산물이다.
◎인터뷰/조사연구기관 「마켓 팩트」 뮬러스 부사장/“연봉 5만불이상 계층 카드 사용 선호/다양한 활용가능 「고객카드」도 인기”
마켓 팩트는 46년에 창립돼 50년의 역사를 가진 조사연구기관이다. 이 조사기관이 최근 플라스틱 카드 특히 고객카드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 발표했다. 마켓 팩트의 부사장 토머스 뮬러스씨로부터 카드 사용과 소비와의 관계를 들어 봤다.
『중산층 이상에서 플라스틱 카드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소득이 높기 때문에 씀씀이가 많은 것은 당연하지요』
그는 연봉이 1만5,000 달러 미만인 사람들은 카드를 사용하기 보다는 현금을 쓰는 경우가 많고 연봉 5만 달러 이상 되는 층에서 카드 사용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정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카드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남성들은 자동차 기름을 넣을 때나 스포츠시설을 이용할 때 카드를 쓰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살림살이를 맡고 있어 카드사용의 폭이 넓습니다』
뮬러스 부사장은 고객카드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면서 『고객카드는 이제 음식, 커피에서 자동차 세차, 세탁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객 카드 예찬론을 펴기도 했다.
『사용자들에게 낮은 가격을 제시하거나 경품을 줌으로써 이익을 돌려주는게 고객 카드입니다. 소매업체들로서는 카드를 발행함으로써 사업을 예측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습니다. 고객을 일단 안정적으로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뮬러스씨는 그러나 이번 조사가 카드 사용자의 동향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카드 대금 연체가 발행은행을 곤혹스럽게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플라스틱 카드가 소비를 활성화시켜 경제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만 대답했다.<뉴욕=김인영 특파원>뉴욕=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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