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문학/문학상 300개 갈수록 상업화(껍데기는 가라:6)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문학/문학상 300개 갈수록 상업화(껍데기는 가라:6)

입력
1996.10.08 00:00
0 0

◎수상,젊은 인기작가 편중 중견은 구색용/“세계화” 구호 외치면서 번역상은 4개뿐/“순수문학 해야 행세” 문단파벌도 심각문예진흥원이 집계한 국내 문학상은 95년말 현재 187개. 신문사의 신춘문예나 문학잡지의 신인상, 공모상은 제외한 숫자이다. 재래의 등단절차인 이 상까지 합치면 매년 시상되는 문학상은 300개에 가깝다. 국내 문화예술상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이다. 돌아가며 받는 동호인상이라면 상은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상은 그런 것이 아니잖은가. 프랑스의 공쿠르상이나 일본의 아쿠타가와(개천)상은 그 나라 문학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학상이다. 그리고 꼭 상금이 많아서 권위가 높은 것도 아니다.

상이 많은 것이 문제라면 문학상이 갈수록 상업화하는 것은 더욱 문제다. 올해 초 한 문학상의 수상자 선정을 앞두고 젊은 소설가들이 문학상 비토를 위해 몇 차례 「모의」를 한 적이 있다. 수상작과 후보작을 「작품집」으로 묶어내는 문학상의 경우 상금(또는 고료), 출판수익에 비해 후보작가들에게 주는 원고료가 턱없이 적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사석에서 이들은 『수상자가 내정된다』 『후보작가들은 「수상작품집」을 그럴 듯하게 꾸미기 위한 들러리다』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문학단행본을 주로 내는 출판사의 편집주간 J씨는 최근 인기있는 여자소설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문학상」 수상자 선정을 앞두고 이 상을 주관하는 출판사가 『심사대상기간이 언제까지이니 우리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라』고 전화를 걸어 왔다는 것이다. J씨는 『상업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젊은 작가를 수상자로 내정하고 중견작가를 후보로 끼워 넣는 구색 맞추기경향이 심해지면서 수록을 거부하는 작가들 때문에 막판에 일부 후보작이 바뀌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5년동안 후보작가에 올랐던 한 중견작가가 『이젠 젊은 작가에 밀려 수상기회를 박탈당했다』며 웃고 말더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유수한 문예지들이 제정한 수천만원 상금의 공모상도 단행본을 내 출판수익을 챙기려 한다는 혐의가 짙다. 평론가나 독자들은 『읽을만한 소설이 없다』고 말하는데도 이런 공모상에서는 당선작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없다. 출판수익을 올릴 수 있는 소설공모상은 늘어나지만 시부문에서 신인을 뽑는 경우는 없다. 『수준작이 없어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는 발표가 특이하게 받아 들여지는 풍토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이야기하는 한국문학계가 200개에 가까운 문학상 가운데 번역문학상이 4개 뿐인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한국현대문학번역상(코리아타임스 제정) 한국문학번역상(문예진흥원) 한국번역문학상(펜클럽한국본부) 번역문학상(한국번역가협회)이 전부이다.

한국문학이 「타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소설가와 평론가들은 「순수」하다. 그들은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지 않으며, 그런 작가가 나오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으며 문학성을 인정받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소설가 양귀자씨는 지난해 현대문학상 수상연설에서 한창 잘 팔리던 그의 소설 「천년의 사랑」에 대해 쓰다 달다 아무런 평론이 나오지 않는 문학현실을 불평했다. 지난 해부터 몰아닥친 독일작가 파트릭 쥐스킨트열풍을 평론차원에서 본격진단한 글은 최근 계간 「리뷰」 가을호에 실린 문학평론가 남진우씨의 「도주, 존재를 위한 투쟁」이 유일하다.

중견소설가 C씨는 『순수문학을 향한 문학인들의 열망은 문단파벌주의와 교묘하게 연계돼 있다』고 말한다. 일정한 그룹에 허리 굽히지 않으면 작가로 출세하기 어렵고, 문단파벌은 이른바 순수문학만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에 대해 독자와 문단의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누구 탓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문학인들이 독자를 무식하다고 여기는 오만함도 한 가지 이유일 것』이라고 지적했다.<김범수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