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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노벨문학상 수상한 폴란드 여성시인 심보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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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노벨문학상 수상한 폴란드 여성시인 심보르스카

입력
1996.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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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꿰뚫는 투명한 메시지/공산화후 저항·투항문학 모두 거부/인간의 나약함·소외감 서정적 묘사/폴란드 4번째,여성으로는 9번째 영광9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비스와바 심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는 서정적인 시어와 인간의 실존을 꿰뚫는 메시지로 폴란드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여성시인이다. 그는 소설가 H 센키에비치(1905년)와 W 레이몬트(1924년), 망명시인 체스와프 미오시(1980년)에 이어 네번째로 폴란드문학의 저력을 입증한 주인공이다. 여성으로는 93년 미국소설가 토니 모리슨에 이어 아홉번째로 영광을 안았다.

그의 문학인생은 인도주의와 실존의 문제에 집중한 시세계처럼 드러나지 않되 진지하게 문학에 몰입하는 자세로 일관되었다. 45년 등단 이후 주간 문예지 「지시에 리테라키에(문학계)」의 논설위원 활동을 제외하고는 거의 공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폴란드 남부의 고도 크라코프에서 시쓰기에만 전념했다. 많은 폴란드시인들이 고국의 공산화 이후 저항이나 투항으로 문학을 해왔으나 그는 두 가지를 모두 거부하는 순수문학인의 자세를 지켰다. 첫 시집 「그래서 우리는 산다」를 발표한 52년과 54년 두 차례 그는 절필을 선언했다. 폴란드 공산정권 수립과 함께 문학인에게 사회주의리얼리즘 원칙이 암묵적으로 강요되던 시기에 문학을 포기함으로써 그는 조국에 순응했다.

그의 시는 크게 두 가지 모티프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내거나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이 주요한 주제이다. 그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 소외감, 고독함 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의 시는 인간이란 「서로 진정한 대화가 불가능한 존재」이거나 「정치적 압력이나 무력 앞에서 쉽게 허물어지는 허약한 존재」임을 잔잔하면서 정확한 말로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의 시는 원초적 고통 아래 놓인 인간에 대한 연대감과 동질의식, 이른바 휴머니즘의 정신을 늘 바탕에 깔고 있다.

스웨덴한림원이 선정발표와 함께 언급한 시 「반복은 없다」(80년작)에는 「물방울 두 개처럼」 다르지만 「별 빛」 아래서 조화를 꿈꾸는 인간의 간절한 소망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들은/시대의 아이들이다/시대는 정치적이다/너의,/우리들의,/너희들의,/낮의 일들,/밤의 일들/이것들 모두가 정치적 문제이다」로 시작하는 「시대의 아이들」등 초기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가 이러한 정서와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지극히 문학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고뇌에 접근하는 그는 그 원칙에 따라 폴란드의 전통적인 낭만주의 시를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옛소련의 위협 아래 있던 폴란드국민들에게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시를 주로 발표해 국가시인으로 칭송받던 미츠케비치에 대해 그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문학이 정치와 체제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공산폴란드를 떠나 50년대 초 프랑스로, 뒤에 미국으로 망명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반체제시인 미오시도 거부했다.

그러나 조용한 생활을 즐기는 성품에도 불구하고 그는 70년대 중반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회에 보내는 공개서한」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폴란드국민의 인권을 제한하려는 공산정권의 헌법수정에 반대하여 전폴란드 문학인들이 일어선 사회운동이었다.

정병권 한국외국어대 교수(폴란드어과)는 『명상적, 관조적인 시어로 인간의 원초적인 고통을 파고 든 그의 문학은 외세의 침략에 힘겹게 견디어 온 폴란드문학이 얼마나 다양한 저력과 깊이를 가진 것인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한민족문학인대회 참가차 내한한 바르샤바대학 한국어문학과 오가렉 최교수는 『체험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회상을 형상화, 폴란드의 나이든 세대는 물론 젊은이들 사이에서큰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고 심보르스카를 소개하고 「추상적 묘사와 깊이 있는 서정」을 시적 특장으로 꼽았다.

국내에는 정교수가 편역한 「동구현대시선집」에 그의 시가 몇 편 소개되어 있지만 유럽에서는 10여개국 언어로 그의 시집이 나와 있다.<김범수 기자>

◎수상 소감/“폴란드 문학 위해서 매우 잘된 일/조용한 생활 못갖게 될까 두려워”

【스톡홀름 AFP 로이터=연합】 폴란드 남부의 산정휴양지인 자코파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심보르스카는 선정소식을 듣고 『나는 매우 놀랐고 지금 행복하다. 그러나 앞으로 조용한 생활을 갖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렵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 상을 받기를 바란 적이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줍음을 많이 타기로 유명한 그는 『나는 대중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이제 어려운 순간이 닥쳐올 것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폴란드문학을 위해서 매우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자신의 작품을 스웨덴어로 번역한 안데르스 보데가르드에게 감사를 표하고 『번역이 서툴렀다면 나의 작품은 오늘날 거론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표 작품

▷다리 위의 사람들◁

이상한 행성이다

이 행성에 사는 사람들도

이상하다.

시간에 얽매여 살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들은 이론을 제기할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예들과 같은

장면들을 연출한다:

처음 보기에는

특별한 것도 없다.

물이 보인다.

물가도 보인다.

물결 위에 작은 배가

힘겹게 가고 있다.

물 위에 다리가 보이고

다리 위에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사람들이

총총걸음으로 가는 것이

역력하게 보인다.

검은 구름에서

방금 비가 세차게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이고

그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구름은

색깔도

형태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가 그치지도 않았다.

배는

동요하지 않고 떠내려 간다.

다리 위의 사람들은

뛰어간다.<정병권 옮김>

◇시인 연보

▲1923년 폴란드 중서부 쿠르닉서 출생

▲1931년 남부도시 크라코프로 이주

▲45년 일간 「지엔느니 폴스키」에 「나는 단어를 찾는다」 발표, 시인 데뷔

▲48년 크라코프의 야기엘 로인스키대 졸(사회학, 폴란드어문학 전공)

▲53년 주간 「문학계」 편집 참여, 칼럼 「비의무적인 독서거리」 연재, 81년까지 논설위원

▲시집 「그래서 우리는 산다」(52년), 「자신에게 던진 질문」(54년) 「소금」(62년), 「일백개의 위로」(67년), 「다리 위의 사람들」 (86년) 「끝과 시작」 (93년) 등 12권

▲현재 크라코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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